“출산전, 남편 속옷·반찬 준비” 분노유발 서울시 매뉴얼

입력 2021-01-06 06:00 수정 2021-01-06 08:31
‘서울시 임신·출산정보센터’ 홈페이지 캡처

‘서울시 임신·출산정보센터’(이하 센터)가 만삭 임신부에게 집안일을 권유하는 내용의 시대착오적 안내문을 내놔 빈축을 사고 있다.

센터 홈페이지에 ‘꼭 알아두세요’라며 임신 35주차 여성이 출산 전 점검할 사항이라고 소개된 내용을 두고 5일 온라인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문제가 된 부분은 ‘임신 말기’ 항목에서 나오는데, 해당 내용이 ‘집안일’과 ‘육아’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센터는 임신 말기 때 임신부가 “밑반찬을 챙겨야 한다”며 “냉장고에 오래된 음식은 버리고 가족이 잘 먹는 음식으로 밑반찬을 서너 가지 준비해 둡니다. 인스턴트 음식을 몇 가지 준비해 두면 요리에 서툰 남편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했다.

또 생필품을 점검하고 옷도 챙겨두라고 한다. 센터는 “화장지, 치약, 칫솔, 비누, 세제 등의 남은 양을 체크해 남아 있는 가족이 불편하지 않게 합니다” “3일 혹은 7일 정도의 입원 날짜에 맞춰 남편과 아이들이 갈아입을 속옷, 양말, 와이셔츠, 손수건, 겉옷 등을 준비해 서랍에 잘 정리해둡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둘째 아이 출산일 경우 갑작스러운 진통이 시작될 때 큰 아이를 맡아 줄 사람 찾는 것도 생필품과 가스를 점검하고, 문단속하는 것도 임신부 역할이라고 언급했다. 체중 관리를 위해 집안일을 미루지 말라고도 했다.

‘임신 중 성생활’ 방법에 대해서도 부적절한 표현을 썼다는 지적이 많다. 센터는 임신 중 성관계 횟수를 줄일 것을 당부하며 “남편이 돌발적으로 아내를 덮치거나 과도하게 격렬한 성행위를 하게 되어 조산 위험이 높아진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라고 언급했다. 해당 페이지 감수는 대한산부인과학회가 맡았다.

이 같은 내용은 “고정된 성 역할을 강요하고 있다”며 여성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SNS나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2021년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렇게 시대착오적일 수 있나” “국가가 비혼, 비출산을 장려한다” “이러니까 애 안 낳는 거다” 등 비판이 쇄도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홈페이지가 만들어진 2019년 6월 당시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임신육아종합포털 아이사랑’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해당 내용은 현재 홈페이지에서 삭제된 상태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