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보다 잘팔린다… 다크웹서 코로나19 백신판매 기승

입력 2021-01-05 21:58 수정 2021-01-05 22:03
최근 다크웹과 텔레그램을 중심으로 코로나19 백신 판매글이 늘어나고 있다. 게티이미지

“단돈 150달러에 화이자 백신을 팝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코로나19 백신 배포가 예상보다 늦어지는 가운데 다크웹과 텔레그램 등을 중심으로 ‘백신 매매’가 성행하고 있다.

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다양한 제약사로부터 입수한 코로나19 백신을 판매한다는 글이 다크웹과 텔레그램에서 다수 발견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취재 결과 한 판매자는 불특정다수에 이메일을 보내 백신 1차 접종 대상자 명단에 수신자의 이름을 끼워 넣는 ‘새치기’를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다. 백신 접종 우선대상자로 선정된 고령자나 의료진으로 구성된 ‘리스트’를 조작해주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를 사칭하며 이 같은 제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백신 매매가 인기를 끌자 일부 다크웹 사이트에서는 코로나19 백신이 ‘불법 판매물 인기 리스트’에 등록되기도 했다. 다크웹 사이트 ‘아가르타’는 인기품목으로 코카인과 위조지폐, 권총 다음으로 코로나19 백신을 제시하며 1회분당 500~1000달러어치의 비트코인을 요구했다.

기자가 판매자에게 백신 운송 방법을 묻자 한 판매자는 “보온포장 패키지에 담겨서 배송될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이 최저 –70도의 초저온 상태에서 유통돼야 변질 우려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믿기 어려운 설명이다.

텔레그램 등 보안성이 강력한 메신저에서도 이 같은 사적 매매 관련 글이 다수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들의 요구에 응해 돈을 보낸다고 해도 실제 백신을 받게 될 확률은 희박하다. 정보보안업체 ‘레코디드 퓨처’의 린지 카예 국장은 “백신을 팔겠다고 주장하는 도메인 대부분은 단순히 트래픽을 늘려 수익을 얻거나 악성 링크로 유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다”고 진단했다.

미 연방수사국(FBI)과 인터폴은 “코로나19 관련 가짜 백신과 치료제 판매가 늘고 있다”며 “이 같은 사기에 당할 경우 피해자의 사이버 보안이나 건강, 심지어는 목숨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음지에서 백신 판매와 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데에는 미국과 유럽의 백신 배포가 예상보다 훨씬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말까지 2000만명에 대한 1차 접종을 마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 접종 건수는 450만명으로 목표치에 한참 미달했다. 초기 백신 물량은 요양원 거주자와 의료진 등에게 배정돼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은 늦으면 올해 가을까지도 백신을 맞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화이자 대변인은 “자사가 제조한 그 어떤 백신도 온라인상에서 유통할 계획이 없다”면서 “인증된 백신접종센터가 아닌 곳에서는 절대로 백신을 맞지 말 것을 당부한다”고 전했다.

미 보건복지부(HHS)와 법무부도 별도 비용을 요구하며 백신 접종을 제안하는 사례가 있다면 지체없이 신고해달라고 강조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