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이 ‘불행한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

입력 2021-01-05 16:16 수정 2021-01-06 10:24
영화 '소울'.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아래는 영화 ‘소울’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성격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각양각색 취향은 또 어디서 생겨나는 걸까. 성장 배경이나 일생일대 사건 때문이 아니라 태어나기도 전 이미 정해져 있던 건 아닐까? 예컨대 ‘호기심’을 배운 영혼은 훗날 개구쟁이가 되고, ‘냉정’을 전공한 영혼은 매사에 냉소적인 아이가 되는 식이다. 덧붙이자면 건반 소리에 영감(Spark)을 얻어 태어난 영혼은 유수의 피아니스트로 자라나고, 공을 차다 지구로 온 영혼은 유망 축구 선수로 자라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디즈니·픽사의 신작 ‘소울’(SOUL)은 이 같은 재기발랄한 상상력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영화 비평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100%를 기록하고 제73회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해외 공개 직후부터 화제를 모은 애니메이션으로,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을 가늠했다가 코로나19로 국내 개봉을 잠정 연기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는 20일 전국 영화관에서 선을 보인다.

500만 관객을 동원한 ‘인사이드 아웃’ 피트 닥터 감독의 ‘소울’에서 도드라지는 건 기발한 설정을 자유자재로 풀어나가는 힘이다. 주인공은 뉴욕의 음악 선생님 ‘조’. 평생을 그리던 밴드에 발탁된 조는 첫 재즈 연주회 날 맨홀 사고로 꼬마 영혼들의 세계인 ‘태어나기 전 세상’에 떨어진다. 여기는 영혼이 기쁨·흥분·슬픔 등 감정을 배우는 학교다. 영혼은 공부를 끝내고 자신의 관심사(영감·Spark)를 발견할 때 비로소 지구 통행증을 받는다.


영화 '소울'.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얼른 지구로 돌아가고픈 조는 간디·테레사 등 성인 멘토조차 혀를 내둘렀을 정도로 시니컬한 22번 아이의 멘토가 돼 ‘영감’을 찾기 위한 험난한 모험 길에 오른다. 감정을 소재로 흥미진진한 어드벤처를 펼쳐나가는 영화는 ‘인사이드 아웃’의 확장판인 셈이다.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던 뮤지션 존 바티스트의 엔딩곡 ‘It’s All Right’을 비롯해 ‘소셜 네트워크’로 오스카 음악상을 받은 트렌트 레즈너·애티커스 로스의 오리지널 스코어 등 음악도 백미다. 재즈 특유의 스윙감이 극을 흐르면서 감정을 고조시킨다. 공들인 영상에서는 파스텔톤의 말랑말랑한 질감으로 표현된 앙증맞은 영혼과 화려한 대도시 뉴욕에 더해 금관악기에 반사되는 빛까지도 세밀히 표현됐다. 영혼으로 나오는 링컨 등 유명인도 이색 볼거리다.

‘소울’이 매력적인 이유는 ‘영혼들 세상’이라는 기발한 이야깃거리를 주제로까지 힘 있게 끌고 나가서다. 특히 22번이 지구로 내려오면서 이야기는 탄력이 붙는다. 처음 경험한 세상이 신기한 22번을 보면서 조는 느낀다. 마지막 대사처럼 “매 순간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22번에겐 이발사의 미소나 허기를 채우려 먹은 피자는 물론 지하철의 소리를 지르는 행인까지 모든 게 이채로운 세계의 일부다. 조는 또 영혼의 세계에서 일에 매몰돼 악령으로 변한 헤지펀드 매니저를 본다. ‘영감’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나 결코 삶의 목적은 아니다. 작품 외적으로도 흑인이 중심에 놓인 애니메이션이어서 의미가 있다.


영화 '소울'.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헤지펀드에서 알 수 있듯 아동용이라기엔 설정이 전반적으로 어렵다. 영혼과 성격의 상관관계, 지구와 태어나기 전 세상의 이야기, 조의 심정 변화를 한 상자에 담기 위해 여러 설명이 따라붙어 때로는 호흡이 가빠 보이기까지 한다. ‘삶에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전형적 결론으로 치닫는다는 점에서 ‘뻔하다’는 평가도 얼마간 나올 듯하다.

하지만 그만큼 영화가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에게 건네는 위로는 확실하고, 또 묵직하다. 2021년 지난해보다 활기찬 한해를 꿈꾸는 관객이라면 “재즈하다”는 영화의 대사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즉흥 연주로 그림을 그리는 재즈처럼, 요지경인 우리 삶도 이미 아름답게 뻗어 나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106분.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