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빠진 MBC 가요축제… 음악방송 위기 본격화

입력 2021-01-04 05:00
비대면 콘서트 '2021 NEW YEAR’S EVE LIVE' 속 BTS의 모습. 빅히트 제공

방송사 음악 프로그램의 위기가 본격화할 조짐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콘서트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연예기획사 역시 고품질의 콘텐츠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게 됐고, 절대 갑이었던 음악방송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다.

0~2%대 시청률을 기록하는 방송가 음악방송이 명맥을 이어올 수 있던 동력은 뭘까. 음악방송은 시청률과는 별개로 돈이 된다. 바로 유튜브에서다. 원래 ‘직캠’이란 팬들이 특정 연예인을 클로즈업해서 직접 촬영한 영상물을 뜻했지만, 현재 이 문화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곳은 방송사다. 무대 기술과 영상 편집력 등 수십년 간 축적된 노하우를 활용해 더 가깝고 선명한 영상을 관람하고 싶어하는 팬들의 갈증을 충족시켜줬고, 해외 팬덤까지 몰리면서 직캠은 방송사의 탄탄한 수입원이 됐다. 기획사는 자체 스튜디오이나 기술력 등 직캠 콘텐츠 제작 능력이 없었기에 팬 마케팅을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고비용을 투자해 음악방송에 출연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방송사가 영상에 등장하는 가수들에게 아무런 권리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방송사는 직캠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기획사의 SNS에는 이 영상을 게시하지 못하도록 했다. 방송사의 갑질에 마찰은 심화했고 결국 기획사들이 칼을 빼 들었다. 지난 7월 한국음악콘텐츠협회·한국매니지먼트연합·한국연예제작자협회는 음악방송 영상을 임의로 편집·재판매해 이익을 얻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표준계약서 제정을 요구했다.

방송국에서 촬영한 영상물의 사용 범위를 규정하자는 것인데, 유튜브 등 방송 외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때는 기획사와 협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미방송분 영상을 방송사가 다른 플랫폼에 판매하는 것은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는 기획사들의 이익과 직접 충돌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협회들은 “지금까지는 관행적으로 별도의 계약서 없이 방송사가 저작권을 가져갔지만 콘텐츠 이용 방식과 플랫폼 환경이 변화한 만큼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비대면 콘서트 '2021 NEW YEAR’S EVE LIVE' 속 뉴이스트의 모습. 빅히트 제공

당시만 해도 기획사에서 방송사 수준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의견을 조율하며 상황을 타개할 이유가 분명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코로나19는 비대면 콘서트의 장을 열어놨고, 기획사는 여러 기술적 협업을 통해 음악방송 수준의 콘텐츠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됐다.

실제로 새해를 맞이해 지난 1일 무료로 전 세계에 공개된 ‘SM타운 라이브 컬처 휴머니티’는 186개국에서 약 3583만 스트리밍을 기록했는데, 음악방송 이상의 무대를 구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온라인에는 ‘내 가수만 보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주행했다’ ‘화질 실화냐, 모공도 다 보인다’ ‘공연 수준 말도 안 된다’는 후기가 빗발쳤다.

MBC '가요대제전' 중 한 장면. MBC 제공

2020년 마지막 날 열린 MBC ‘2020 가요대제전’은 음악방송의 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같은 날 JTBC에서는 방탄소년단(BTS)이 포함된 빅히트 레이블 합동 콘서트 ‘2021 뉴 이어스 이브 라이브’를 송출했는데, 방송 역사상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다. 이건 더이상 음악방송 출연이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는 의미였고, 가수들의 무대를 방송으로 송출할 수 있는 주체는 기획사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현재 음악방송의 위상은 바닥을 치고 있다. MBC 음악방송에서 BTS가 모습을 감춘 건 꽤 오래 전 일이다. 수년 전 연말 시상식 무대를 조율하며 MBC와 빅히트 사이가 틀어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후 빅히트 레이블에 합류한 그룹 여자친구, 세븐틴, 뉴이스트 등도 MBC 음악방송에 출연하지 않았다. 앞서 YG엔터테인먼트 가수들은 KBS에, SM엔터테인먼트 가수들은 엠넷에 출연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예전에는 음악방송 출연 여부나 순위가 성공의 절대적인 지표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기획사도 방송사의 부당함에 목소리를 내면서 자체 콘텐츠로 돌파구를 찾고 있는 셈이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음악방송에 출연하는 이유는 직캠 때문인데 한 번 출연하려면 경우에 따라 수천만원이 깨질 때도 있다”며 “하지만 녹화 시간이 길고 정작 직캠을 소속사에 제공하지 않아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직캠의 경우 방송사 도움을 빌릴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도 지금은 기술력을 보유하게 돼 꼭 음악방송에 나가지 않아도 직캠 마케팅이 가능해졌다”며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조만간 음악방송에 대형 소속사 가수들은 아예 안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방송사와 대적할 여력이 없는 중소 기획사 가수들은 여전히 음악방송을 소통 창구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