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치됐지만 더 절망” 코로나 앓고 맛과 냄새 잃은 사람들

입력 2021-01-04 00:02 수정 2021-01-04 00:02

코로나19의 대표적 증상인 후각 상실은 치료와 함께 대개 수십일 안에 완화된다. 하지만 일부 환자는 잃어버린 후각을 되찾지 못해 사회활동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코로나19 후유증으로 후각을 상실한 미국인들을 인터뷰했다. 시애틀에 거주하는 캐서린 한센은 지난해 3월 코로나19에 감염됐다. 후각을 잃었고 얼마 되지 않아 음식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 한번 먹어본 레스토랑 음식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할 만큼 미각이 뛰어났던 한센은 이제 음식을 먹으며 종이를 씹는 듯 절망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를 앓은 뒤 후각을 상실한 캐서린 한센. NYT

한센은 고통스러운 식사를 가급적 빨리 끝내려고 수프와 셰이크를 삼키며 지낸다. 그는 “시력을 잃은 것만큼이나 괴롭다”면서 “음식의 맛을 알면서도 느끼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후각은 다양한 맛을 인지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혀에 있는 미각 세포로는 신맛, 짠맛, 단맛, 쓴맛 등 기초적인 맛만 느낄 수 있어 먹는 즐거움을 누리기에 한계가 있다. 맛을 보지 못하면 음식 섭취 자체를 줄이게 되고, 이는 결국 건강 악화로 이어진다.

후각이 사라지면 물건 타는 냄새, 음식 상한 냄새 등을 맡지 못해 일상에서 예기치 않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뉴욕 퀸스 주민인 미셸 밀러는 지난해 3월 코로나19에 걸린 후 현재까지 후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최근 부엌에서 가스가 샜지만 냄새를 맡지 못해 가족이 그를 밖으로 피신시킨 일이 있었다. 밀러는 “후각과 미각을 잃는 것 이전에 이건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후유증으로 후각을 잃은 미셸 밀러는 최근 부엌에서 가스가 샜지만 냄새를 맡지 못해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 NYT

후각 소실은 코로나19 완치자의 정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영국 연구자들이 지난해 3~9월 코로나19로 후각 소실을 겪는 환자 9000명의 심리를 분석한 결과 대다수는 사회활동에서 즐거움이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하버드대 의대의 산딥 로버트 타다 신경생물학 부교수는 “냄새는 기억, 감정과 밀접하게 연관돼 사람의 정서적 행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코로나19 환자들의 후각이 회복되지 않는 원인은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 타다 부교수는 “(코로나 후유증은) 매우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라면서 “후각 소실을 경험하는 환자 비율을 대략 10%라고 추정하면 전 세계적으로는 수백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고 영구적 후각 소실 사례가 더욱 늘면서 전문가들은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고 NYT는 덧붙였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