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구치소 대량구매한 체온계, 책상 찍어도 36.5도”

입력 2021-01-01 14:28 수정 2021-01-01 15:09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한 수용자가 확진자 과밀수용 등 불만 사항을 직접 적어 취재진을 향해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동부구치소 안에서 방역 대응이 엉성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한 내부자의 증언이 나왔다.

동부구치소에 수용 중인 기결수 A씨는 최근 지인에게 편지를 보내 집단감염 사태 후 내부에서 벌어진 일들을 자세하게 전했다. 그는 “코로나19 전수검사 때 (직원들이) 재소자 통제를 거의 하지 않는다”며 “한 방씩 열어야 하는데 마음대로 방 2개씩 열라고 하고 재소자들끼리 겹쳐져 이야기해도 말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방역복 없이) 마스크만 쓰고 들락날락하는 직원도 있고 마스크를 아예 안 쓴 직원도 있다”며 “방마다 체온계를 넣어 준다고 대량 구매했는데 제대로 작동이 안 되는 체온계를 사 왔다. 그래서 다 나눠주지 못하고 폐기했다고 한다. 책상을 찍어도 36.5도가 나온다”고 썼다. 구치소 측에서 방역 대응을 위해 체온계를 구매해 일부 배급했으나 불량임이 확인돼 전부 나눠주지 못했고 회수해 폐기했다는 것이다.

A씨는 확진 수용자들을 이동시키는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그는 “(확진자들이 사용한 물건 등) 쓰레기 처리도 대강대강 이뤄지고 있다”며 “일부 사동 청소부가 방역복을 입고 위험 지역을 들어갔다가 나온 뒤 그대로 청정지역에 가거나 밀접 접촉자에게서 책을 빌려와 읽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그저 확진되길 기다리는 상황인 것 같다”며 “전문가가 없으니 모두가 전염될 수 있는 상황인데 법무부는 내부 사정도 파악하지 못한 채 핑계만 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수용자들이 취재진을 향해 휴지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수용자들 사이에 퍼진 불안감은 시설 내 여러 가지 유형의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에 따르면 확진된 수용자가 교도관에게 침을 뱉거나 코를 푼 휴지를 던지는 등 통제 불능의 일도 일부 발생하고 있다.

또 지난달 29일에는 수용자들이 수건과 휴지를 창문 밖으로 내밀어 흔드는가 하면 손으로 커다란 ‘X자’를 그리는 모습까지 포착됐다. 한 수용자는 A4용지에 불만 사항을 직접 적어 취재진을 향해 들어 보였는데, 거기에는 “살려주세요. 질병관리본부 지시. 확진자 8명 수용” “확진자 한방에 8명씩 수용. 서신(편지) 외부 발송 금지”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확진자 과밀 수용 등을 문제 삼으며 도움을 구하는 내용이다.

수용자 가족 역시 “동부구치소가 지난달 19일 밤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의 방을 옮기는 과정에서 180여명을 강당에 모이게 하는 등 방역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며 분노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교정시설 내 집단감염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오르자 감독 기구인 법무부를 향한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추미애 장관은 지난해 11월 27일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한 달여 만인 지난달 29일에야 처음 동부구치소를 방문해 늑장 대응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야권 일부에서는 ‘후진국형 참사’라는 표현과 함께 추 장관이 ‘윤석열 찍어내기’에만 몰두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요구하는 일부 목소리까지 등장하자 추 장관은 1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교정업무를 총괄하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려 매우 송구하다”며 사과했다. 이어 “동부구치소를 생활치료 시설로 지정해 이후 확진자를 수용하는 시설로 재편하고 이른 시일 내에 비확진자를 타 교정기관으로 이송해 분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