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동의 받는다더니… 정부, 국시 미응시 의대생 구제

입력 2020-12-31 17:03
2021년도 제85회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 첫날인 지난 9월 8일 서울 광진구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으로 관계자들이 출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의사 국가고시(국시) 시험을 거부했던 의대생들을 구제하기로 했다. 당초 ‘국민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던 정부가 의대생들의 실력행사에 사실상 ‘백기’를 든 셈이다. 정부가 원칙을 깼다는 비판과 함께 공정성 논란이 제기된다.

보건복지부는 2021년 의사 국가고시 실기 시험을 상·하반기로 나눠 2회 실시하기로 하고, 상반기 시험은 1월 말 시행할 방침이라고 31일 밝혔다. 그간 국시 실기시험은 하반기에만 치러져 왔는데 시험 기회를 한 차례 더 늘린 것이다. 앞서 의대생들은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등 정부 정책에 반발해 실기시험 응시를 거부했다. 이에 따라 의대생 2700여명이 응시를 취소했다.

복지부는 의대생 구제를 위해 의료법 시행령도 개정하기로 했다. 현행 의료법 시행령은 국가시험을 실시하려면 시험 실시 90일 전까지 공고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그간 ‘다른 국가고시와의 형평성·공정성 문제 등으로 국민적 공감대 없이 기회를 부여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반면 의료계에선 재응시 기회를 요구해왔고 지난 10월 주요 대학병원장들이 ‘문제를 해결해달라’며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학생들은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사과의 뜻을 밝힌 적이 없다. 하지만 정부는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의료 공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입장을 번복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스스로 원칙을 허물었고, 의대생들에게만 특혜를 준다는 ‘공정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의대생 국가고시 재응시의 특혜를 막아주세요’라는 청원을 올리고 “확진자가 되어, 자가격리자가 되어 시험을 볼 기회조차 박탈당한 임용고시 준비생들의 눈물을 기억해 달라. 대학별 고사를 볼 수 없게 되어 내년 재수학원을 알아보러 다녀야 하는 고3 엄마의 심정을 생각해 달라”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1년에 보는 국기시험이 도대체 몇 개인가. 그것도 전부 단체행동하면 구제해줄 것이냐”고 반문했다.

박민숙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편법과 꼼수를 써서 재응시 기회를 준 건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며 “공정과 형평이라는 원칙을 훼손한 것은 국민 눈높이에도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불편을 드려 매우 죄송하다”면서 “국민 건강과 환자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최우선적 소명이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이해를 구했다.

복지부는 다만 의대생들에게 추가 시험 기회를 주되 올해 응시자와는 차이를 두기로 했다. 우선 올해 실기 시험 응시자와 내년 상반기 응시자는 인턴 전형을 달리해 각각 모집한다. 올해 실기시험 응시자를 대상으로 한 인턴 정원은 1200명, 내년 상반기 정원은 2000명이다. 복지부는 올해 응시생은 내년 1월에 인턴으로 배정하고, 내년 합격자는 합격 이후인 3월쯤 각각 배정할 계획이다.

모규엽 송경모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