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가전제품 방문점검 노동자로 일하는 A씨(40)는 지난달 말 한 가정집을 방문했다가 하루종일 불안에 떨어야 했다. 렌탈제품 점검을 요청했던 고객이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접촉해 자가격리중이라는 사실을 방문 후에야 알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 해당 고객과 일가족 4명은 모두 자택에서 격리된 채로 코로나19 진단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A씨는 30일 “아무리 자가격리 이전에 잡아둔 방문점검 예약이라 해도 자가격리에 들어가면 예약을 연기하는 것이 상식 아니냐”며 “당시 고객이 마스크도 쓰고 있지 않아서 최대한 거리를 두고 30분 만에 점검을 마치고 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고객은 당시 방문 직전까지 “언제 도착하느냐”며 A씨를 재촉했다고 한다.
나중에 고객 가족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A씨는 이 소식을 들을 때까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서둘러 귀가한 그는 혹시라도 가족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 방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연로하신 아버지와 돌도 지나지 않은 딸, 어린이집에 갓 들어간 아들이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1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방문점검 노동자들의 업무 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고객이 요청하면 무조건 직접 찾아가 업무를 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감염에 취약하다. A씨처럼 방문한 후에야 자가격리자가 지내는 가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고객에게 바이러스 취급을 당해 기분이 매우 상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인터넷망 설치를 하는 방문기사 B씨(36)는 코로나 사태가 터진 이후 고객 갑질이 더 빈번해졌다고 토로했다. 최근엔 면 장갑을 낀 채로 고객 집을 방문했더니 고객이 자기가 보는 데서 새로운 장갑으로 바꿔 착용할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B씨는 “요즘 시국에 방역 대비를 철저히 하려는 점은 이해하지만 마치 바이러스가 집에 들어온 것처럼 쏘아대는 고객의 태도에 굉장히 기분이 상했다”며 씁쓸해 했다. 하지만 고객만족도 조사에 민감한 B씨로서는 군말 없이 지하주차장에 내려가 차에서 새로운 면장갑을 들고 와야 했다고 한다. B씨는 “고객 갑질이 하루이틀 일이 아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새로운 종류의 갑질에 시달리게 될 것 같다”며 하소연했다.
고객이 방문기사의 건강을 위협하는 경우도 있다. 수도관 점검 업무를 하고 있는 50대 김모씨는 요즘 겨울철 계량기 동파 점검 때문에 하루 10여곳의 가정집을 방문하고 있다. 그런데 김씨가 방문하는 가정집 주민 가운데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김씨를 맞이하는 주민이 적지 않다고 한다. 김씨는 “어느 집에 밀접접촉자가 있을지, 어느 건물에 확진자가 있을지 알 수 없어 불안하지만 방문기사가 고객에게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집집마다 마스크 착용에 조금 더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