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스타 강사 설민석(50)씨가 결국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석사 논문이 서강대 교육대학원생 논문과 50% 이상 겹친다는 내용의 표절 의혹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면서다. 설씨는 29일 SNS에서 “논문을 작성할 때 연구를 게을리하고 다른 논문을 참고하는 과정에서 인용과 각주 표기를 소홀히 했음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변명 여지가 없는 과오이며 교육자로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안일한 태도로 임한 점 깊이 사과드린다”며 “책임을 통감해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겠다”고 밝혔다.
설씨는 자숙과 함께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하지만, 그가 남긴 파장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그가 프로 방송인이면서 유튜브 스타이고, 또 베스트셀러 작가여서다. 그리고 연쇄적으로 이어질 이 같은 파문의 근저에는 교양 예능을 만드는 방송사의 안일함이 깔려 있다.
이번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받은 곳은 역시 방송계다. 딱딱한 역사를 말랑말랑하게 풀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온 설씨는 최근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세계사’)와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선녀들’)를 이끌고 있었다. 모두 편성에 힘준 프로그램들로 주말 황금시간대에서 5% 이상의 시청률로 선전했다.
그런데 설씨 하차로 이들은 그야말로 직격타를 맞게 됐다. 특히 설씨 이름을 내건 ‘세계사’는 물론 ‘선녀들’까지 전부 역사가 주제인 예능이고 그의 입담에 크게 의존하던 프로그램이어서 방송가 안팎에서는 조기 종영설도 나오고 있다. ‘세계사’ ‘선녀들’ 측은 현재 “계획을 정리 중”이라는 입장을 밝힌 채 장고에 들어간 상태다.
유튜브 콘텐츠를 두고도 논란이 예상된다. 30일 설씨가 진행하던 채널 ‘설쌤TV’는 “재정비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며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현재는 모든 영상의 댓글 사용도 중지된 상태다. 문제는 과거 설씨가 출연한 숱한 교양 프로그램 콘텐츠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는 점이다. tvN 인기 교양 시리즈인 ‘책 읽어드립니다’ ‘어쩌다 어른’ 기존 출연분을 비롯해 같은 제작진의 채널 ‘사피엔스 스튜디오’의 설씨 클립 콘텐츠는 많게는 조회 수 수백만회를 기록 중이었다.
설씨는 ‘설민석의 무도 한국사 특강’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설민석의 삼국지’ 등을 펴낸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출판계에 타격이 불가피한 이유다. 설씨는 앞서 ‘고사성어 대격돌’ ‘한국사 대모험’ 등 아동용 서적도 여럿 출간했었다. 한 출판 관계자는 “피해가 클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아무래도 역사 관련 서적이다 보니 작가 의혹에 따른 영향이 없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교보문고에 따르면 논란 이튿날인 30일 기준 설씨 서적의 판매량은 대동소이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사 강사로 활약하다 2012년 MBC 간판 예능 ‘무한도전’에 출연하면서 명성을 얻은 설씨는 이후 여러 교양 프로그램과 유튜브, 출판계로도 발을 넓혔다. 에듀테이너로서의 전방위적 활약 그 중심에는 늘 방송이 있었다. 특히 설씨의 주요 무대였던 교양 프로그램은 내용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수였다. 하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앞서 설씨는 ‘세계사’에서 이집트 역사 왜곡 비판을 받은 직후 본인 유튜브 채널에서 ‘재즈가 초심을 잃어 탄생한 게 R&B’라는 발언으로 다시금 음악사 논란을 일으켰다. 방송사 러브콜로 한국사를 넘어 세계사 등 다른 분야에 무리하게 손을 대면서 부족한 지식이 노출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일이 교양 프로그램 제작 현황의 문제점을 짚고 유사한 사태의 재발을 막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봤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현재 불붙은 논란은 제작진이 지식을 엄밀하게 전달한다는 교양의 본질을 잊고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면서 “시청률과 화제성, 출연자 스타성에만 의존한다면 얼마든지 같은 일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