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파고는 넘기 힘들다” 故 박원순, 측근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

입력 2020-12-30 11:27 수정 2020-12-30 11:35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뉴시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사망하기 전 측근들에게 “이 파고는 넘기 힘들 것 같다”는 등 성추행 피소를 의식한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밝혀졌다.

30일 서울북부지검은 박 전 시장이 지난 7월 8일 임순영 서울시장 젠더특보를 통해 ‘구체적 내용·일정은 알 수 없으나 피해자의 고소와 여성단체를 통한 공론화가 예상된다’는 취지의 말을 전해들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그 이튿날 아침 고한석 전 비서실장과 공관에서 만나 “피해자가 여성단체와 함께 뭘 하려는 것 같다. 공개되면 시장직을 던지고 대처할 예정”이라며 “고발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빠르면 오늘이나 내일쯤 언론에 공개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다만 박 전 시장은 피해자가 이미 경찰에 성추행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한 사실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 같은 언급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검찰은 밝혔다.

박 전 시장은 고 전 실장과의 대화가 끝난 뒤 이날 오전 10시44분쯤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메모를 남긴 채 공관을 나왔다.

또 집을 나와 북악산 쪽으로 이동한 이후인 오후 1시24분쯤 임 특보에게 ‘아무래도 이 파고는 내가 넘기 힘들 것 같다’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내고, 15분 후인 오후 1시39분 고 전 실장과 마지막으로 통화하면서 “이 모든 걸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파악됐다.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 신호는 이날 오후 3시39분쯤 끊겼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정과 유골함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뒤 박 시장의 고향인 경남 창녕으로 이동하기 위해 운구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박 전 시장은 사망하기 전날인 7월 8일 오후 3시쯤 임 특보가 “시장님 관련하여 불미스럽거나 안 좋은 얘기가 돈다는 것 같은데 아시는 것이 있느냐”고 묻자 “그런 것 없다”고 답했다. 임 특보가 재차 “4월 이후 피해자와 연락한 사실이 있느냐”고 물었는데도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하지만 박 전 시장은 당일 밤 11시쯤 임 특보와 기획비서관 등을 공관으로 불렀고, 이때 “피해자와 4월 사건 이전에 문자를 주고받은 것이 있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4월 사건’은 지난 4월 14일 서울시장 비서실 소속 남자 직원이 이 사건 피해자를 성폭행한 일을 뜻하는 것으로, 가해 직원은 이후 기소돼 판결 선고를 앞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 전 시장을 비롯해 관련자 23명의 휴대전화 총 26대의 통화 내역을 확인하고 박 전 시장과 임 특보의 휴대전화 2대를 디지털 포렌식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파악됐다고 밝혔다.

또 텔레그렘 내역 중 ‘아무래도 이 파고는 내가 넘기 힘들 것 같다’ ‘너무 많은 사람에게 면목이 없다. 얼마나 모두 도왔는데’ 등 심경이 드러난 메시지에서는 삭제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날 박 전 시장의 피소 사실을 유출했다는 의혹으로 고발된 서울중앙지검과 청와대, 경찰 관계자 등을 모두 불기소(혐의 없음) 처분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