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외선차단지수(SPF)가 50 이상인데도 성분과 발림성이 좋아 인기를 끌었던 국내 로션형 선크림 제품 대부분의 실제 SPF 수치는 현저히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피부과학연구원 안인숙 원장은 최근 유튜브에 국내 선크림 제품의 실제 SPF 수치를 검사한 결과를 공개했다. 검사 대상은 가벼운 발림성과 좋은 성분을 자랑하는 로션 또는 에센스 타입 선크림으로, 유명 유튜버 추천 제품 10개와 ‘화해’(화장품 성분 분석 플랫폼)에서 10위 안에 든 제품 20종을 추렸다.
안 원장은 “발랐을 때 뻑뻑한 크림 제형의 선크림은 SPF 50이 나올 수 있어도 로션형은 쉽지 않다. 굉장한 기술력을 요구하는 일”이라며 “검사 결과 20개 중 14개 제품이 차단지수 떨어짐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14종 중 SPF 수치가 현저히 낮은 5종으로 다시 ‘임상 프리테스트’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임상 프리테스트는 본실험 전에 수치가 나올지 안 나올지 미리 해보는 것으로 앞선 검사와 다르게 피부에 직접 선크림을 발라 자외선 조사기를 이용해 차단력을 확인한다”며 “이 정도면 SPF 50 여부는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5개 제품 모두 SPF 30 미만이었다. 성분이 순하면서 부드럽게 발리고 백탁현상까지 적어 많은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제품들이다. 안 원장은 “소비자들은 보통 SPF 수치를 보고 사는데 이건 아니지 않냐”면서 “너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안 원장은 최근 해외에서 국내 브랜드의 선크림 제품이 SPF 수치 조작 논란에 휩싸여 이번 실험을 진행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해당 제품이 해외 쇼핑몰에서 엄청나게 판매됐는데, 사용감과 성분이 좋으면서 SPF까지 50이라 전문가들 사이에 논쟁이 많았다고 한다”며 “그래서 폴란드, 독일 연구소에서 검사한 결과 SPF 19였다”고 말했다. 또 “내가 해보니 정말 SPF 28이 나오더라. 피시험자 조건과 검사 기계가 달라 수치에 약간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면서 다른 제품들은 어떤지 직접 확인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안 원장은 “보통 브랜드에서 SPF 50에 사용감 좋고 EWG 그린등급인 선크림을 제조하고 싶다고 의뢰하면 제조사에서 SPF 50이라고 표기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준다”며 “그 SPF 50이라는 문구는 검측 기관에서 테스트를 거쳐야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조사에서 검측 기관에 의뢰 시 선크림 샘플과 예상 SPF 수치를 알려주면 기관은 테스트를 통해 해당 수치가 나오는지 여부를 측정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런데 업계에는 ‘어느 기관이 수치가 잘 나온다’는 소문이 돈다. 이번 해외 논란 제품의 검측 기관도 그중 하나”라며 “브랜드는 몰랐을 수 있어도 제조사와 검측 기관은 알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 원장은 “해외 네티즌 사이에서 해당 브랜드가 수치를 조작했다, 소비자를 기만했다 등 난리가 났다”면서 “나아가 K뷰티를 폄하하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애초에 검측 기관에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브랜드 측 역시 몰랐다 하더라도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선크림은 남녀노소 모두가 사용하는 제품”이라며 “소비자를 기만하지 않는 올바른 제품이 판매될 수 있도록 제도적, 양심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