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백신, 4월 재보선 변수되나…野는 ‘악재’ 우려

입력 2020-12-30 05:00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이 29일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 내 브라이언 올굿 병원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가 꺼내든 코로나19 백신 카드가 내년 4월 재보궐선거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 백신 늑장 대응 논란으로 최근 야당 지지율이 반짝 상승했지만, 재보선을 앞두고 백신 접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제약사 모더나의 스테판 반셀 최고경영자(CEO)와 통화해 2000만명 분량의 모더나 백신을 공급받는 데 합의한데 대해 야당은 백신 물량 확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확보 시점에 대해선 혹평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날 “문 대통령의 노력을 평가한다”며 “그러나 이 전화는 어제가 아니라 지난 여름에 이뤄졌어야 했다. 세계가 백신 확보전에 뛰어들고 우리 전문가들이 (백신을 서둘러 확보하라고) 절규했던 때”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국무위원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 변창흠(오른쪽)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은 ‘정부·여당이 백신 접종 스케줄을 내년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맞추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지난 4·15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의 180석 압승엔 ‘K-방역’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에 백신 변수에 대한 야당의 우려는 상당한 상태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정부·여당이 재보선 승리를 위해 내년 초 백신 접종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 4월 재보선을 앞두고 백신뿐 아니라 소상공인 등에게 추가적인 금융·세제 지원 등 여러 지원책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게 야당의 시각이다. 국민의당 한 중진 의원은 “여당은 정책적으로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은 데 비해 정책 결정·집행 권한을 갖지 못한 야당의 수는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코로나 백신 늑장 대응 논란이 불거지면서 야당은 상당한 반사이익을 누렸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21~24일 전국 18세 이상 2008명을 조사해 전날 발표한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2.2%p)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긍정 평가)은 전주보다 2.8% 포인트 하락한 36.7%, 부정 평가는 2.0% 포인트 상승한 59.7%로 집계됐다. 부정 평가는 출범 후 최고치다. 또 국민의힘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2.2% 포인트 오른 33.8%였고, 민주당은 1.3%포인트 내린 29.3%를 기록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오차범위 밖인 4.5% 포인트 차로 제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날 청와대가 모더나 백신 확보를 전격 발표하면서 이런 백신 이슈를 등에 업은 상승세가 계속되긴 어렵다는 우려가 더욱 커진 상황이다. 정부에서 밝힌 대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2월 접종에 이어 모더나 백신의 접종도 뒤따라 이뤄지는 상황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일 경우 21대 총선 때와 마찬가지로 여당에 유리한 선거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신상진 국민의힘 코로나19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코로나 백신 관련 민심 이반이 심화되니 서둘러 백신 확보에 나선 것 같다”라며 “문재인정부가 코로나와 같은 국가 감염병 위기 상황을 정치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상진 국민의힘 코로나19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이번 모더나 백신 확보가 오히려 정부의 늑장 대응을 자인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내년 재보선 일정에 맞춰 백신 공급 일정을 조정하려 한 것 아니냐’는 야권 일각의 의혹 제기가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그동안 청와대는 ‘지난 4월부터 백신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고 했는데, 그때부터 진작 문 대통령이 나서고 직접 (제약사 측과) 전화 통화를 했으면 됐던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