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시민들의 주거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집세를 내지 않아도 계속해서 거주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법률이 발의됐다. 코로나19로 인해 소득이 감소한 저소득층이 살 곳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다.
28일(현지시간)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브라이언 카바나 민주당 상원의원은 이날 특별회의를 열고 ‘부동산 모라토리엄법’ 발의 계획을 소개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소득이 끊기거나 감소한 저소득 가구를 대상으로 최대 2달간 월세 납부를 유예해주는 것이 골자다. 이 기간 동안 집 주인은 집세를 받지 못하더라도 임차인을 강제로 퇴거시킬 수 없다.
법안을 작성한 카바나 의원은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우리는 시민들의 주거 안정을 보장해 복리후생을 보호하는 것이 의회의 핵심적인 책무 중 하나라는 데 동의해왔다”며 “이 법으로 주거지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수많은 미국인들이 구제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라토리엄법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임차인이 관련 서류를 작성해 당국에 제출하면 2달간은 집세 납부 여부와 상관없이 주거를 보장해준다. 다만 이때 임차인은 자신의 소득 감소가 팬데믹과 구체적으로 관련돼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자발적 퇴사나 휴직 등 팬데믹과 관련 없이 소득이 감소한 사람들은 보호받지 못한다.
집세를 받지 못하는 임대인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도 담겨있다. 이 기간 동안 임대인은 해당 부동산과 관련해 압류나 차압을 당하지 않는다. 세금도 일정 부분 부과가 유예될 전망이다. 더힐은 이와 관련해 “10채 미만의 임대주택을 운영하는 소규모 임대사업자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앤드류 쿠오모 주지사는 곧 법안에 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부동산 모라토리엄법과 관련해 그들(상원)과의 합의를 마쳤다”면서 “법이 의회를 통과하자마자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임대인들은 모라토리엄법이 건물주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지운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제이 마틴 지역주거개선프로그램 이사는 “주 정부의 이번 조치는 언 발에 오줌 누기”라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임차인의 사정은 딱하지만 임대인들도 무상으로 집을 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호소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입증하기 위한 절차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조셉 스트라스버그 부동산안정화협회 대표는 “법이 이대로 통과되면 팬데믹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제도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며 “실제로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도 월세를 내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팬데믹으로 경제 위기를 맞은 미국에서 임차인의 강제 퇴거를 금지하는 법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보도에 따르면 연방정부는 이날 통과된 경기부양책 패키지법을 통해 기존에 시행되고 있던 강제퇴거 금지 조항의 효력을 내년 1월 말까지로 연장했다. 캘리포니아주도 1월까지 강제퇴거를 금지했고 코네티컷과, 델라웨어, 콜로라도, 하와이주는 2월까지 금지했다. 워싱턴과 오리건, 네바다주는 팬데믹이 종식될 때까지 강제퇴거를 무기한 금지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미 전역에서 현재 납부되지 않고 밀린 월세는 700억달러(약 76조7000억원)에 달한다. 미 인구조사국은 집세를 밀렸거나 다음 달까지 낼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1100만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