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 사찰’ 키움에 엄중경고… ‘솜방망이’ 논란 불가피

입력 2020-12-28 19:59
허민 키움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 뉴시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구단 사유화 의혹을 받고 있는 키움 히어로즈의 허민 이사회 의장에게 직무정지 2개월 제재를 내렸다. 다만 팬 사찰 의혹에 대해서는 사법기관의 판단이 필요한 사안으로 보고 징계 결정을 유보했다.

KBO는 28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상벌위원회를 마친 뒤 “선수들과 캐치볼·배팅 연습 등의 구단 공식 훈련 밖의 행위로 논란을 일으킨 허 의장에 대해 이사회 의장 신분에서 부적절하고 불필요한 처신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KBO리그의 가치를 훼손한 점이 품위손상행위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며 “야구규약 제151조 및 부칙 제1조에 의거해 직무정지 2개월을 부과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키움에서 방출된 이택근은 지난달 말 KBO에 키움에 대한 징계를 요청했다. 허 의장이 지난해 6월 경기도 고양 야구국가대표훈련장에서 훈련과는 별도로 2군 선수와 캐치볼한 사실이 한 팬의 영상으로 외부에 알려지자 구단 CCTV를 열람해 제보자를 색출했다는 것이다.

KBO는 조사위원회를 열어 키움의 팬 사찰 의혹을 조사하고 지난 22일 상벌위원회를 통해 제재를 심의했지만, 키움의 소명 요구로 엿새를 미룬 논의도 결론을 맺지 못했다. 상벌위는 CCTV 열람 행위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여부에 대한 사법기관의 판단이 필요한 사안으로 보고 판단을 유보했다. 키움에 대한 법적 조치 결과에 따라 제재 여부를 심의하기로 했다.

키움의 김치현 단장은 엄중경고 조치를 받았다. KBO는 “법규 위반 오해의 소지가 있는 행위로 경기 외적인 면에서 리그의 품위를 손상시킨 것으로 판단해 야구규약 제151조에 의거, 김 단장에게 엄중경고하고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고 설명했다.

정운찬 KBO 총재는 오는 31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허 의장과 김 단장에 대한 징계를 최종 결정했다. 정 총재는 “키움이 팬을 최우선으로 둬야 하는 프로스포츠 의무를 저버렸고, 구단과 선수 간 기본적인 신뢰를 무너뜨리는 등 리그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엄중경고는 가장 낮은 수위의 징계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의 여지를 남기게 됐다. KBO는 앞서 지난 3월 키움을 상대로 이장석 전 대표의 ‘옥중 경영’ 의혹에 따른 제재금 2000만원을 부과하면서 “향후 리그 가치를 훼손하는 중대한 사안이 발생하면 사안에 따라 지명권 박탈, 제명 등 규약의 범위 안에서 강력하게 대응할 방침”이라며 경고한 바 있다.

KBO는 이날 키움에 대한 제재 수위를 결정하면서 “당시의 방침을 토대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키움은 2021시즌 준비에 차질을 빚게 됐다. 통상 2월에 시작되는 스프링캠프의 정상적인 진행도 어렵다. 지난달 말 사임한 하송 전 대표이사의 후임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이사회의 수장인 허 의장까지 앞으로 2개월간 직무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키움 관계자는 “내부에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