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내 동생 사지마비인데…잘못했다는 사람이 없다” [인터뷰]

입력 2020-12-29 00:05 수정 2020-12-29 00:05
실제 사건과 관계없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민청원 캡처

지난해 12월 16일 경남 진주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가던 고3 학생이 사고로 중상을 입었다. 막 출발한 버스 앞으로 렉스턴 차량이 끼어들면서 접촉사고가 났다. 일명 ‘칼치기’(차로 급변경) 운전이었다. 이 과정에서 버스에 앉으려던 여고생이 균형을 잃으며 넘어졌고 동전함에 머리를 부딪쳐 목뼈가 골절됐다. 학생은 현재까지도 전신마비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검찰은 가해 차주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차주의 처벌 전력과 보험 가입 여부 등을 참작해 1심에서 금고 1년형을 선고했다. 금고형은 유죄 판결을 받은 수형자를 교도소에 가두되 징역형과 달리 노역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 1심 선고 후 가해 차주는 형량이 높다며 항소했고, 지난 17일 2심 첫 재판을 마쳤다.

안타까운 사연은 지난여름 여고생의 가족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제기하며 알려졌다. 이들 가족이 지난달 재차 올린 청원글은 지난 19일 정부 답변 요건인 20만명을 넘어섰다.

피해자 언니 A씨는 지난 24일 국민일보에 “아무런 잘못도 없는 동생이 어른들의 잘못된 운전으로 한순간에 사지마비가 됐다”며 “중상해를 입은 피해자만 있고 누구 하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가해자는 없다. 무분별하게 끼어든 가해 차량도 진심 어린 사과는 없었고, 버스 기사도 경찰에서 조사했는데 과실이 없다고 나왔다”고 울분을 토했다.

사고 당시 버스 블랙박스 화면. 피해자 언니 제공.

"미안하다, 합의해 달라" 가해자가 내뱉은 두 문장

-동생의 현재 상태는 어떤가

“동생은 사고로 인해 한순간에 목뼈가 골절되며 신경이 손상됐다. 아직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고 언제 일어날지 기약 없는 병원생활을 하고 있다. 동생은 심리적으로 불안해하고 있다. 언제까지 회복될 거라는 확신도 없고 많이 힘들어한다. (가족들은) 몸 상태도 걱정이지만 동생의 우울증이 더 걱정이다.”

-재활치료 중인 건지

“재활치료는 하고 있지만 치료사 선생님이 와서 관절이 굳지 않게 움직여주는 정도이다.”

-가해자에게 사과받은 적이 없다던데, 현재도 그런가

“아직도 진심 어린 사과는 못 받았다. 지난해 12월 사고가 나고 4개월 뒤 형사재판이 처음 열렸을 때 법정에서 가해자를 처음 만났다. 사고가 난 뒤로 단 한 번도 병문안을 온 적도, 가족을 찾아온 적도 없다. 따로 만나자는 제의도 없었다. 애초에 따로 만나야 사과를 받지 않나. 만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을 수 있겠나. 다만 전화로 ‘미안하다, 형사합의해 달라’ 두 마디만 반복하며 합의를 요구했다. 동생의 상태나 안부에 대해서는 전혀 묻지 않더라. (전화한 것도) 아무래도 본인의 형량을 줄이기 위한 태도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고 후에 처음으로 가해 차주와 연락이 된 때는 언제인가

“사고 후 처음으로 가해자와 아버지가 통화한 적이 있다. 경찰이 전화 연결을 해준 거였다. 가해 차주에게 경찰관이 전화로 ‘지금 피해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네줄 테니 미안하다고 사죄하라’고 했더니 그때 가해자가 아버지께 자기도 딸을 키우는 부모라고 얘기를 했다더라. 그렇다면 상대방 입장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자신의 딸이 사지마비가 되었더라도 남 일처럼 방관할 것인지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의적 책임조차 지지 않고 있다.”

-사건 진행 상황에 대해

“1심 판결(금고 1년형)이 나온 뒤 바로 항소했다. 버스 기사도 경찰에서 조사했는데 과실이 없다고 나왔다. 피해자만 있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가해자는 아무도 없는 상태다.”

-1심 재판 당시 가해 차주의 태도는 어땠나

“1심에서 재판이 여덟 번 열렸다. 지난 10월 21일 1심 선고가 있었다. 선고를 앞두고 가해 차주가 본인의 죄를 무마하려고 공탁금(가해자 측이 합의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 법원에 맡기는 돈)을 걸려고도 했었다. 본인 때문에 동생은 몸이 마비됐는데, 공탁금으로 형량을 낮추려고 했던 거다. 1심 선고 당시 코로나19로 법정 출입구가 한곳으로 통제됐다. 가해자가 먼저 나와 우리 가족을 기다리면 만날 수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가해자는 재판이 끝나자마자 먼저 나가버리더라. 나중에 보니 바로 2심을 대비해 법무법인을 통해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했더라.”

-지난 17일, 2심 첫 번째 공판이 있었다. 당시 상황은

“재판에 가해 차주와 차주 측 변호사가 출석했다. 가해자 측 변호사는 버스 기사의 과실을 얘기하며 본인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버스 기사에게 책임이 있다는 거다. 가해자가 앉자마자 방청석 쪽으로 고개를 돌려 우리 가족을 봤다. 우리 눈을 몇 초간 응시하는데 미안한 기색이 없어 보이더라.”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사고 당시 버스 기사의 과실도 지적한 것으로 알고 있다.

“버스 기사가 (승객이 앉기 전에) 급출발했으니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안전운전을 하지 않은 거다. 사고 당시 현장에 동생과 함께 있던 친구 3명이 상황을 전해줬다. 버스 기사는 사고 직후 승객들에게 ‘지금 렉스턴 차량이 끼어든 거 보셨죠?’라고 말했다더라. 옆에 있던 아줌마가 ‘애가 다쳤는데 무슨 소리냐’고 따질 정도였다고 한다. 112, 119 신고도 승객이 해준 거였다. 버스 기사는 곧바로 하차해 렉스턴 차량 유리 창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처음 경찰 조사를 받을 때 경찰관으로부터 ‘어떤 사람이 51% 잘못하고 다른 사람이 49%를 잘못했을 때는 더 잘못한 한 사람만 기소된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엔 렉스턴 차량만 기소되어 황당했다. 이후 버스 기사를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고, 검찰에서 경찰에 수사 지시를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경찰은 ‘버스 기사는 잘못이 없다’는 의견을 검찰에 냈다. 검찰에서는 아직 버스 기사의 법적 처벌 문제에 결론을 못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

졸업식도 못간 동생…가족들 심장 찢기는 고통

-동생은 어떤 사람이었나

“고등학교 때는 반장도 했었고, 친구들을 잘 챙기고 쾌활한 성격이었다. 사고 당시인 12월 말에는 고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있었다. 결국 졸업식에도 참석 못하고 병문안 온 친구들이 졸업 앨범을 갖다 주고 그랬다.”

-가족들의 심경은

“20살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 힘든 사고다. 20살이면 지금 제일 예쁜 나이지 않나. 그런 동생이 병원에 있으니 가족들은 하루하루 피가 마르고 심장이 다 찢기는 고통을 겪고 있다. 교복 입은 동생 또래 친구들이 지나가면 눈물이 난다. 빠르게 옆을 지나가는 시내버스나 렉스턴 차량만 봐도 아직까지 심장이 두근거린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동생이 어른들의 잘못된 운전으로 한순간에 사지마비가 됐다. 그러나 중상해를 입은 피해자만 있고 누구 하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가해자는 없다. 하루아침에 행복했던 가정이 풍비박산난 거다. 현재 동생은 엄마가 24시간 간호를 하는 상황이다. 동생은 한순간에 전신이 마비됐는데 동생을 이렇게 만든 칼치기 차량은 고작 금고 1년도 많다고 항소한 상태라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

-국민청원 20만명을 달성해 청와대 답변을 앞두고 있다. 어떤 답변을 기대하는지

“피해자가 겪고 있는 아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우리 가족의 고통에 비해 가해자의 형량이 너무나도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행법상 끼어들기는 경과실이라고 하더라. 대형버스 앞 무분별한 칼치기는 법적으로 중과실로 분류해 엄하게 책임을 물었으면 좋겠다. 또 승객이 앉은 뒤 버스가 안전하게 출발할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되길 바란다. 그리고 대중교통 승하차 시 발생하는 교통사고도 빈번한데, 이런 사고들에 대한 개선책을 담은 답변이 나왔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금고 1년형은 피해자인 동생이 겪고 있는 고통과 비교하면 너무 가볍다. 2심에서는 가해자에게 정말 합당한 형량이 내려지길 바란다. (국민청원 관련) 많은 분들이 동생을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 얼른 동생이 집에 돌아와서 예전처럼 가족들이 다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송다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