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신임 위원장으로 지난 24일 선출된 양경수(44) 민주노총 경기지역본부장이 취임 후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에 대해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김명환 전 위원장이 2017년 12월 당선 직후 대통령 면담부터 요청한 것과 대조적이다. 양 당선인은 위원장 선출 이후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 국민일보와 28일 인터뷰를 갖고 “내년 11월 총파업은 대선을 앞두고 노동자들의 절박한 의제를 후보자 공약에 반영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또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와 노사정 사회적 대화 참여에도 부정적 입장을 밝혀 향후 노정관계 험로를 예고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비정규직 출신 첫 위원장 당선 소감은.
“100만 유권자 투표에서 위원장으로 당선된 건 큰 영광이다. 비정규직 출신이 민주노총 위원장에 처음 당선된 건 시대적 흐름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가 심각하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더 귀 기울이고 투쟁에 매진하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이겠다. 생각과 관점이 다른 조합원 의견도 충분히 경청하겠다. 과거 선거 때는 재투표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재투표 없이 절차가 순탄했다고 본다.”
-내년 11월 총파업을 추진하는 의도는.
“2022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노동자들의 절박한 의제를 후보자 공약에 반영하려는 의도다. 내년 10~11월쯤이면 주요 정당의 대권 주자가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한다. 대선 기간에 맞춰 노동 문제를 전면에 앞세우고 후보자 공약을 통해 정책으로 입안시킬 계획이다. 국민적 지지와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총파업은 주요 노동 의제를 정책에 반영하는 또 하나의 변곡점이 될 것이다. 과거에도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1만원’ 목소리를 냈고, 대선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걸었다.”
-내년 1월 취임 후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 계획은.
“문 대통령을 만나 면담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보진 않는다. 빨리 만난다고 해결될 사안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미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 노동계와 약속한 사안들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이 만남을 제안한다면 거부하거나 회피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정부가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먼저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노정관계가 더 악화할 거란 우려가 큰데.
“향후 노정관계는 정부 태도에 달려 있다. 정부가 노동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계속 투쟁할 수밖에 없다. 반면 긍정적으로 다가온다면 대화로 협력할 수 있다. 다만 현재의 민주노총을 강성이라고 보는 것은 정부가 노동자를 위한 긍정적인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점을 방증한다. 현 정부의 정책은 노동 친화적이지 않다. 코로나19 대책 역시 근시안적이었다. 세상에 무조건 투쟁은 없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투쟁으로 단호히 대처하겠다.”
-경사노위·노사정 대화 참여 가능성은.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 참여할 이유는 없다. 사회적 대화는 노사가 상생하는 자리다. 그런데 현재는 정부와 사용자가 원하는 정책만을 추진하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거 같다. 노동자를 지렛대로 보는 경향이 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노사정 사회적 대화 합의문만 보더라도 사용자 양보는 없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 역시 이미 발표한 것들뿐이었다. 해고금지, 생계소득 보장 등에 대해서는 답을 내놓지 않았다. 경사노위에 참여하는 것도 현재는 적절치 않다고 본다. 민주노총은 이미 60여개 정부 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다. 정책은 노정교섭, 자본은 노사교섭으로 문제를 극복하겠다.”
-2022년도 최저임금 논의 방향성에 대한 의견은.
“최저임금 1만원을 꺼낸 게 이미 6~7년 전 일이다. 그런데 내년에도 한국의 최저임금은 1만원에 못 미친다. 당시에는 ‘1만원’이 주는 상징적 의미가 있었지만, 이제는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 현 정부 들어와서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라 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이 어려움에 부닥쳤다는 주장이 있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을 ‘경제위기 주범’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실질적으로는 최저임금 인상 폭보다 임대료 인상 폭이 더 컸다. 산입범위 확대로 정권 초기 16% 인상 효과는 무력화된 지 오래다. 최저임금과 소상공인의 임대료 문제를 함께 다뤄야 한다. 최저임금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겐 실질적인 임금 협상 기준이다. 2022년도 최저임금은 당연히 1만원을 넘어야 하고 노동자가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임금 수준이 새 기준으로 제시돼야 한다.”
-대규모 집회 강행에 대한 비판이 많은데.
“비대면 사회에 걸맞은 집회 방식 전환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은 회의를 화상으로 전환하고 있고 관련 장비 투자도 늘려나갈 계획이다. 주요 공약으로 민주노총 방송국 설립을 내걸기도 했다.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집회를 열려고 고민 중이다. 아쉬운 점도 있다. 정부나 경찰이 과도하게 집회를 막는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 이후 민주노총이 수많은 집회를 열었지만, 방역 수칙을 어긴 적은 없었다. 8·15 집회 때도 확진자가 1명 나왔는데 추가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다. 인원 제한, 발열 체크, 참가자 명부 작성, 간격 두기 등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는데도 집회 자체를 열지 못하게 하는 건 ‘정부에게 거슬리는 목소리는 듣지 않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임기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는.
“29일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단식투쟁에 들어간다. 기업의 최고경영자에게 책임을 묻도록 반드시 법제화해야 한다. 위원장 임기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 문제 만큼은 빠르게 힘을 모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개인적인 욕심일 수 있지만 ‘박수받고 떠나는 위원장’이 되고 싶다. 민주노총 최초이자 마지막 비정규직 위원장이 되겠다는 각오로 임하겠다.”
글·사진=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