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이런 날이 오는군요” 퇴임하는 최장수 국토부 장관 김현미

입력 2020-12-28 17:41 수정 2020-12-28 17:52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역대 최장수 기록을 세우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 장관은 집 걱정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마음이 무겁다며 후임 장관에 양질의 주택 공급을 당부했다. 하지만 변창흠 국토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 절차가 마무리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김 장관의 이임사가 사전에 배포되면서 지나치게 앞서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 장관은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온라인 이임식을 열고 “마침내, 이런 날이 오는군요”라며 입을 열었다. 그는 이어 “2017년 6월 23일 취임식을 가진 이후 오늘로 1285일이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장관과 간부, 직원의 관계라기보다 무수한 전투를 함께 치러낸 전우였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문재인 정부 출범 첫 조각 때 입각해 3년 6개월간 근무한 최장수 국토부 장관이다. 문 대통령과 코드가 맞고 추진력도 강해 정부 안팎에선 ‘실세 장관’으로 꼽혔다.

김 장관은 “잠을 이루기 어려운 시간이었다”며 임기 동안의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광역버스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했고, 타워크레인 사고로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졌다”며 “항공사 갑질 문제로 전국이 들썩였고, BMW 화재로 하루하루 가슴을 졸였다. 타다 문제로 택시기사님들의 안타까운 분신, 그리고 KTX 강릉선 탈선 사고도 터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 장관은 구조적인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고, 소정의 성과도 거뒀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통산업인 건설·택시·화물차 등은 산업구조의 구조적 모순과 함께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쉽지 않았다”며 “그러나 우리는 2003년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겠다는 화물연대 총파업 이후 17년 만에 화물차 안전운임제를 도입했고, 1999년 헌법불합치 판정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장기미집행공원 부지의 상당 부분을 지켜내는 성과를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용산공원은 2003년 평택 이전 합의 후 17년 만에 기지반환과 공원 조성을 향한 역사적인 첫발을 떼었다. 건설업의 칸막이식 업역 혁파는 45년 만에, 고 김대중 대통령님의 대선 공약이었던 택시 완전월급제는 30년 만에 실현됐다”고 평가했다. “수십 년 동안 해묵은 문제를 정부와 국회, 업계 그리고 시민사회가 치열한 소통과 협력을 통해 사회적 대타협으로 해결해 뜻깊었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김 장관은 집값 안정화 등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남았다고도 강조했다. 김 장관은 “집 걱정을 덜어드리겠다는 약속을 매듭짓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무척 마음이 무겁고 송구하다”며 “그러나 수도권 127만호 공급 기반을 확충하고 31년 만에 임차인의 거주권을 2년에서 4년으로 보장하는 임대차 3법이 통과된 만큼 머지않아 국민의 주거안정은 꼭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이어 “임대주택의 질적 수준도 중요하다. (후임 장관과 국토부 공무원들은) 재정 당국과 잘 협력해서 충분한 면적과 품격을 갖춘 누구나 살고 싶은 평생 주택을 꼭 만들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장관은 또 “자율차, 드론, 스마트시티, 공간정보는 물론 전통적인 건설·철도·항공·물류 산업까지 혁신의 성과는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의 생활과 안전이 보장될 때 빛을 발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시기 바란다”며 “건설노동자 임금 직불제와 기능인 등급제, 버스 준공영제, 택시 완전월급제가 제대로 안착할 수 있도록 살펴달라”고도 말했다.

김 장관은 “상임위 문턱을 넘은 생활물류법이 택배 종사자의 실질적인 처우개선으로 이어지도록 성심을 다 해주시기 바란다”고도 당부했다.

한편 김 장관이 변창흠 국토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 절차가 마무리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이임식을 진행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란이 일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전 국회 국토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를 기립 표결로 채택했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이날 오전 변 후보자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국민의힘 국토위원 합동 기자회견 이후 기자들과 만나 “국토부가 이날 오후 5시쯤 김현미 장관의 퇴임식을 가질 것으로 들었다”며 “이렇게 되면 청문 과정은 왜 필요했는지, 야당은 왜 필요한지 묻고 싶다”고 반발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오늘 김현미 장관에 대한 이임식이 실제로 있느냐”라며 “이임식이 예정된 게 맞고 이것이 변창흠 후보자에 대한 장관 임명을 근거로 한다면 그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소속인 진선미 국토위원장은 “(김 장관에 대한 퇴임식을) 확인한 바로는 사실과 다르다”며 “퇴임식 일정은 예정에 없었다고 한다”고 했다. 다만 “(정부 부처에서 퇴임식에 대한) 준비 작업은 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김 장관이 이날 이임사를 발표하면서 여당이 야당 반발을 막기 위해 거짓으로 수습한 게 됐다. 국토부는 김 장관의 이임사를 오후 5시쯤 사전 배포했다. 반면 청와대는 이날 오후 5시23분쯤 국회에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된 변창흠 국토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문 대통령이 인사 재가를 했다고 밝혔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