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보다 ‘쇼잉’ 강조해온 탁현민, 애먼 논란 자초했나

입력 2020-12-27 17:53 수정 2020-12-27 17:57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대국민연설을 통해 대한민국 2050 탄소중립 비전을 선언하고 있다. 이날 연설은 탄소 중립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흑백영상으로 방송됐다. kbs 캡처.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국민의힘이 자신을 방송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예고한 것과 관련해 27일 “영상이 송출된 후 전달받은 격려로 소회를 대신한다”고 밝혔다. 다만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의 중요성을 명시한 방송법과 외국 대사들의 해당 방송에 대한 칭찬이 무슨 상관이냐는 지적도 나온다.

탁 비서관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탄소중립영상의 흑백 송출과 관련해 국민의힘의 고소 소식을 전해 들었다”다며 이같이 남겼다.

탁 비서관은 행사와 관련한 각국대사들의 격려를 소개했다. 세계 각국의 주요 인사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한민국 탄소중립 선언’ 흑백 영상 생중계에 대해 아이디어를 높게 평가했다. 탁 비서관이 이를 소개하며 자신을 고소하려 하고 있는 국민의힘을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주한 EU 대사는 “12월10일 문 대통령님의 연설은 상징적으로 흑백으로 방영됐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2050 탄소중립 사회를 향한 대한민국의 확실한 약속을 보여줬다”라고 강조했다.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 대사는 “저는 2050년까지 대한민국의 배출을 넷제로까지 감축하겠다는 문 대통령님의 약속을 환영한다”며 “흑백 영상 방영은 에너지 절약을 위해 멋진 아이디어였다”고 덧붙였다.


요아나 도너바르트 주한 네덜란드 대사 역시 “흑백 동영상을 사진 찍어 본부에 송부, 보고하면서 짧은 동영상이지만 에너지 절약의 노력이 돋보였다고 생각하며, 2050 탄소중립을 실현시켜 나가는 이행 노력의 일환으로 이를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도 “흑백으로 연출하면서 에너지 절약이라는 메시지가 잘 전달된 것 같다”고 했다.

앞서 국민의힘 미디어특별위원회는 성명서를 통해 문 대통령의 영상 송출과 관련해 “생중계를 흑백화면으로 처리하면서 탁 비서관이 정한 방송 지침에 따라 화면을 흑백으로 전환해 내보냈다는 주장이 KBS 공영노조로부터 나왔다”라며 “이러한 행위들은 공정성과 독립성을 핵심 가치로 다루고 있는 방송법의 근본적인 취지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위는 “방송법 제105조 제1호에 따른 방송편성에 관하여 규제나 간섭을 한 죄에 해당될 수 있다”라고 고소 이유를 설명했다.

방송법은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해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는다.

KBS는 흑백방송이 논란이 되자 지난 11일 “‘2050 대한민국 탄소중립 비전 선언’ 중계방송은 KBS 중계 제작진이 청와대 측 담당자와 여러 차례 협의를 통해 방송 시간과 카메라 위치, 영상 연출, 화면 구성 방법 등 주요 사안을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또 “탄소 배출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하는 차원에서 일부 영상이 흑백으로 처리된 것도 이와 같은 협의 과정을 거쳐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탁 비서관이 방송에 일방적으로 개입한 게 아니라 방송사와 상호 간 협의를 거친 작품이라는 것이다.


방송업계는 탁 비서관이 방송법을 위반했다고 보기엔 애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하는 등 방송에 개입한 혐의로 이정현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전 대표 사례와 탁 비서관 사례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평소 내용보다는 형식에 치중해온 탁 비서관이 애먼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방송법 위반 지적에 ‘외국에서는 다 좋아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대처하는 건 올바른 해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야권 관계자는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수많은 대통령 행사를 치르며 논란을 최소화해야 하는 자리”라며 “탁 비서관이 의욕만 앞서서 오히려 애먼 논란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