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부터 수주 절벽에 시달렸던 조선업계가 4분기 들어 총 15조원에 달하는 수주 ‘잭팟’을 터뜨리면서 올해 실적이 연말에 몰린 배경에 업계 안팎의 관심이 쏠린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선주들이 주문을 하반기로 미룬 경향이 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국내 업계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등 고부가가치 선박 기술을 기반으로 해외 업계를 제치고 수주량을 독점했다는 평가다.
27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의 올해 수주목표 달성률은 각각 91%, 65%, 75%다. 지난해의 82%, 91%, 82%와 비교하면 코로나19 여파를 선방했다는 평가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10~30%대에 그치던 빅3의 수주 달성률은 하반기, 특히 4분기 들어 퀀텀 점프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4분기(10~12월)에만 총 51척, 54억9000만 달러 규모의 건조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기간 삼성중공업은 25억 달러 규모의 선박 블록·기자재 계약을 따내고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8척 등을 수주했다. 이 회사는 올해 전체 수주량의 약 82%을 4분기에 수주했다.
대우조선해양도 이 기간 LNG 운반선 6척, VLCC 5척, 컨테이너선 10척, 초대형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VLGC) 1척, 잠수함 성능개량 3척 등 총 25척(38억2000만 달러)을 수주했다. ‘빅3’ 업체는 올해 현재까지 총 210억 달러(23조1735억원)를 수주해 4분기에만 달성한 물량(약 15조원)이 전체 수주 물량의 65%를 넘어섰다.
업계는 코로나19 여파로 상반기에 선주들이 발주를 미뤘던 걸 하반기 업황이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자 발주 랠리에 나섰다고 봤다. 업계 관계자는 “‘빅3’ 업체들이 최근 잇달아 수주에 성공한 물량은 프랑스의 모잠비크 LNG 프로젝트 등 연초부터 계약이 예상됐다가 미뤄진 물량”이라며 “선사들은 보통 연간 단위로 계획을 짜는데, 하반기 들어 업황 타격이 조금이나마 회복되자 선박 가격이 저점을 찍은 시기를 기다렸다가 발주한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업황 회복에 따른 수주 물량을 해외 업계가 아닌 국내 빅3가 흡수할 수 있었던 건 국내 업계의 독보적인 LNG선, VLCC선 건조 기술력 덕분이다. 올해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발주된 대형 LNG선(쇄빙 LNG선 포함)은 총 63척으로, 이중 한국 빅3의 점유율은 73%이다. VLCC는 올해 전 세계적으로 총 42척이 발주됐는데 한국의 점유율은 81% 달한다.
이들 종류의 선박은 일반 선박보다 가격이 센 동시에 높은 수준의 건조 기술력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력은 자본과 인력으로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없는 영역”이라며 “국내 업계의 건조 기술력은 오랜 기간에 걸쳐 증명됐기 때문에 해외에서 중국 등 보다 한국에 콜을 보낸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