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소년B가 사는 집’, 일본서 작품상 수상

입력 2020-12-27 14:59 수정 2020-12-27 20:02
연극 '소년B가 사는 집의 2015년 한국 국립극단 공연 포스터(왼쪽)와 2020년 일본 나토리 사무소 공연 포스터, 나토리 사무소는 또다른 한국 연극 '짐승의 시간'을 '소년B가 사는 집'과 함께 나란히 선보였다.


이보람 극작가의 ‘소년B가 사는 집’(연출 마나베 다카시)이 일본 문화청예술제상 연극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일본 문화청은 25일 홈페이지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의 표창 내역을 발표했다. 문화청이 매해 연극·음악·무용·대중 예능 등 분야별 우수작을 뽑아 수여하는 문화청예술제상은 일본 예술계에서 높은 권위를 가진 상이다. 문화청은 올해 연극 부문에서 대상 없이 우수상 4개 팀만을 선정했다.

최근 한국 희곡이 일본에서 번역돼 종종 무대화 되고 있지만 이런 권위있는 상까지 받은 사례는 거의 없었다. 문화청은 ‘소년B가 사는 집’을 두고 “친구를 죽여버린 14살 소년과 가해자 가족이 사회로부터 고립된 모습을 그렸다”며 “소년의 범죄와 재생을 주제로 죄와 벌, 용서의 문제에까지 다다른다. 일본 가정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 내용으로, 등장인물의 갈등을 드러내는 섬세한 연출과 체온이 전해지는 배우의 호연으로 긴박감 넘치는 무대가 됐다”고 평가했다.

‘소년B가 사는 집’은 최근 여러 연극상을 받았다. 일본판을 연출한 마나베 다카시는 일본의 권위있는 연극상인 기노쿠니야상 개인상을, 이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한 심지연은 오다시마 유시(小田島雄志) 희곡번역상을 수상했다.

이보람 작가는 배우 김윤석의 첫 감독 데뷔작인 ‘미성년’의 희곡 원작자로도 유명하다. 연극을 보고 매료된 김윤석이 이 작가에게 공동 작업을 제안했고 이후 함께 ‘미성년’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2014년 초연된 ‘소년B가 사는 집’은 14살에 같은 학교 친구를 죽인 대환과 가족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풀어내 호평받은 작품이다. 이 작가는 1999년 미국 콜롬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10년 후 가해자 어머니가 피해자 가족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이 극을 구상했다고 알려져 있다.

‘소년B가 사는 집’은 한일연극교류협의회와 일한연극교류센터가 20년 동안 이어온 희곡 번역소개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국현대희곡 드라마리딩 때 처음 일본에 소개됐다. 공연은 나토리사무소 제작으로 올해 11월 도쿄 시모키타자와 소극장B1 무대에 올랐다. 나토리사무소는 수년 전부터 ‘현대한국연극’ 시리즈를 통해 일본에 한국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온 제작사로 이번에 ‘소년B가 사는 집’과 함께 김민정 작가의 ‘짐승의 시간’을 함께 선보였다.

이번 작품의 수상은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등 한국 콘텐츠가 불붙인 일본의 한류 붐과도 무관치 않은 현상으로 풀이된다. 대중문화 콘텐츠로 시작된 관심이 순수 예술 영역으로도 옮겨오고 있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물론 ‘벌새’ ‘찬실이는 복도 많지’ 등 다양한 독립예술영화가 주목받았고,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과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등 여러 서적이 일본에서 화제를 모았다.

한국 희곡을 일본에 꾸준히 소개해 온 이사카와 주리 번역가 겸 코디네이터는 “고연옥 작가의 ‘손님들’을 비롯해 여러 한국 연극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일본에 선보였고 또 많은 관심을 끌었다”면서 “이 같은 기대는 한국 작품을 일본에 꾸준히 소개해온 단체들의 노력과 한류 붐이 맞물린 결과”라고 말했다.

이날 재일교포 정의신 극작가의 신작 ‘54의 눈동자’(연출 마쓰모토 유코)도 문화청예술제상 우수상을 동시 수상했다. 세토나이카이 작은 섬에 있는 조선인학교를 배경으로 일본 패전 후 20년에 걸쳐 수난을 겪은 조선인학교 교사들과 졸업생의 갈등과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