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쉼터, 사람에게도 유용한 이유 [개st상식]

입력 2020-12-27 09:30 수정 2020-12-27 09:30
"뭐, 이정도면 잘 만들었다옹" 길고양이가 캣돌봄이들이 만든 쉼터에서 한겨울 추위를 피하고 있다. Treehugger

인적이 드문 풀숲에서 스티로폼으로 만든 길고양이 쉼터를 본 적 있을 겁니다. 동물단체와 캣돌봄이들은 겨울이면 이곳저곳에 길고양이 쉼터를 짓습니다. 서울 여의도공원, 강동구청 인근처럼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쉼터 운영을 공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양이 쉼터는 왜 필요한 것일까요? 너저분한 모양새가 미관을 해친다며 눈살을 찌푸리는 분들이 상당한데요. 알고 보면 쉼터는 고양이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유용합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고양이 쉼터의 효용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왔다옹…추위에 취약한 이유

고양이들은 태생적으로 추위에 약합니다. 미국 국립연구협의회(NRC)의 2006년 연구에 따르면 고양이가 선호하는 일상 온도는 섭씨 30~36도로, 인간의 적정온도인 17~20도보다 10도 이상 높죠.

추위에 약한 것은 고양이 가문의 내력 때문인데요. 약 1만년 전 고양이의 선조들은 후덥지근한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서 키워졌는데 이후 나라 간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세계로 퍼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프리카가 고향인 그들에게 영하 10도까지 뚝 떨어지는 겨울 날씨는 얼마나 추울까요.

"영하 10도라니 실화냥" 추운 겨울이면 길고양이들은 서로의 체온에 의지한다. catingtonpost

영하권 날씨에 고양이들은 따뜻한 곳을 찾아 돌아다닙니다. 대다수는 갓 주차된 자동차 엔진룸, 주택가 열풍기 등에 몸을 숨기는데요. 그 과정에서 기계에 몸이 끼어 큰 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고양이 쉼터, 사람에게도 유용한 이유

고양이 쉼터를 보면 눈살을 찌푸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장 큰 오해는 고양이의 번식을 조장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고양이를 돌보는 것은 오히려 개체 수를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유는 영역 동물의 습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양이 등 영역 동물들은 기존에 서식하는 개체가 있다면 외부 개체가 지역을 침범하지 않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진공 이론(Vacuum Effect)’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너구리, 고양이 등 영역 동물의 개체 수 조절을 위해 무작위로 포획해 살처분하는 경우와 중성화, 급식 등 일정한 돌봄을 제공하는 경우 두 가지를 비교 분석했습니다.

진공이론을 설명하는 그림. 영역동물들은 습성상 빈 구역이 생기면 외부에서 새로이 유입한다. 이에 따라 영역 동물을 포획-살처분(왼쪽)해도 개체수는 줄지 않는다. 반면 구역 동물에게 급식, 중성화를 제공하며 관리하면 번식을 줄일 수 있다. allycat

연구 결과 포획해 살처분할 때 개체 수는 잠시 줄었지만 다시 원상태를 회복하는 패턴을 반복했습니다. 해당 구역의 개체가 사라지자 주변 영역의 개체들이 침투한 것입니다. 지역 살처분을 5차례나 반복했는데도 고양이 개체 수를 전혀 줄이지 못한 예도 있었습니다. 포획에 동원된 비용과 인력은 고스란히 낭비된 셈입니다.

반면 구역 내 동물을 돌본 경우 개체 수는 일정하게 유지됐습니다. 먹을 것을 제공하고, 그 과정에 포획 후 중성화(TNR)를 실시하자 기존의 영역 동물들은 증식을 멈췄죠.

"주택 공급해줘서 고맙다옹" neighborhoodcats

겨울 쉼터를 운영하면 안전사고도 막을 수 있습니다. 고양이들이 추위를 피해 자동차 엔진룸, 건물 난방기구 등으로 파고들면 기기 고장 등 안전사고 위험이 커지는데요. 쉼터를 제공하면 고양이들이 사람의 공간에 침투하는 경우는 줄어듭니다.


입구 좁게, 단열 재질…고양이 쉼터 제작법

고양이 쉼터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고양이보호단체인 네이버후드캣(NHC)은 가정에서도 쉽게 따라 만들 수 있는 고양이 쉼터 매뉴얼을 공개했는데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티로폼 두께는 2.5cm, 너비는 가로·세로 60cm 권장
-쉼터 내부에는 짚 등 단열재를 채울 것
-입구는 최대한 좁게. 가로·세로 15cm 권장
-내부가 젖지 않도록 지면과 6cm 이상 띄울 것

미국의 대표적인 고양이보호단체 네이버훗캣(Neighborhoodcat, NHC)이 제작한 고양이 쉼터. NHC

재료를 갖춘다면 제작에 걸리는 시간은 15~30분입니다. 하나의 쉼터마다 고양이 두세 마리가 뭉쳐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죠. 30분의 투자로 고양이에게 3개월의 따뜻한 겨울을 선물할 수 있답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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