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메랑된 여당의 ‘정치검찰 프레임’…그래도 사과는 없다

입력 2020-12-24 17:57 수정 2020-12-24 19:50

여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문재인정부 검찰 개혁에 대한 반발로 규정하고 검찰을 압박해온 더불어민주당이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유죄 판결로 타격을 입었다. 비록 1심 결과이지만 법원이 검찰 수사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 민주당의 그동안 행태에 제동을 건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에 총력 대응해 왔던 여권은 그러나 정 교수 유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1년 넘게 끌어온 국정 혼란에 대해 사과나 성찰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당내에선 법원 판결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리당략에 따라 검찰과 사법부까지 공격하는 퇴행정치이자 반헌법적 행태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조 전 장관 수사에서 촉발된 정치검찰 프레임
민주당의 이같은 ‘정략 프레임’은 지난해 조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부터 본격화됐다. 민주당은 이를 검찰 개혁을 저지하기 위한 검찰의 정치행위라고 맹비난했다. 검찰이 지난해 조 전 장관과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잇달아 기소하자 윤도한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흔든 수사였지만 결과는 너무나 옹색하다”며 “태산이 떠나갈 듯 검찰이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뛰어나온 건 생쥐 한 마리뿐”이라고 비판했다. 조 전 장관은 지난해 6월 청문회에서 “그것(표창장 위조)이 확인되면 여러 가지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제 처가 그걸 했다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다”고 결백을 강조했다.


법원은 그러나 지난 23일 “피고인 정경심은 단 한번도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한 적이 없다”고 판시하며 정 교수를 법정 구속했다. 그럼에도 여권에선 반성의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또다시 음모론을 꺼내들고 있다.

조 전 장관은 정 교수 법정구속 직후 페이스북에 “장관에 지명되면서 이런 시련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며 “더 가시밭길을 걸어야할 모양”이라고 썼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의 판사 사찰이 노린 것”이라고 말했다. 윤 총장의 사찰에 겁먹은 법원이 검찰 손을 들어줬다는 의미다. 윤영찬 의원은 “자식 스펙에 목숨 걸었던 이 땅의 부모를 대신해 정 교수에게 십자가를 지운 건가”라며 불법행위를 엄호했다. 김남국 의원은 “세상 어느 곳 하나 진실을 외칠 수 있는 곳이 없는 것 같다”고 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이번 법원 판결에 대해 사과나 반성의 모습을 보인 책임있는 여권 인사는 한 명도 없었다.

주요 사건마다 거듭되는 사법부 비난


당리당략에 따라 사법부를 폄훼하고 비난하는 민주당의 태도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월 김경수 경남지사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자 홍영표 당시 원내대표는 “법과 양심에 따라야 할 판결이 보복의 수단이 되고 있다. 자칫 국민 염원으로 만들어낸 탄핵과 대선 결과를 부정당할 수도 있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이 유일한 탄핵세력이자 촛불 계승자라는 인식에서 나온 오만한 발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홍익표 대변인도 “사법부의 잘못된 세력은 저희가 단호하게 싸워서 우리가 사법부 개혁을 하겠다”며 재판부를 개혁 대상으로 매도했다.


결국 김명수 대법원장까지 나서 “도를 넘어 표현이 과도하거나, 개개의 법관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가는 건 헌법상 보장된 법관 독립의 원칙이나 법치주의 원리에 비춰 결코 적절하지 않다”며 자제를 촉구해야만 했다.

이달 초 월성1호기 관련 문건 삭제 혐의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2명이 구속되자 우원식 의원은 “정권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한 감사원, 검찰의 행태에 법원까지 힘을 실어줬다. 참으로 유감”이라며 “사법권 남용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때 구속된 공무원을 ‘희생양’이라고 표현했다가 논란이 일자 이를 삭제했다.

2015년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이뤄진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6월부터 재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한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준 한만호씨가 검찰의 강압 수사를 폭로한 비망록이 보도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 비망록 역시 재판에 증거로 제출돼 이미 판결에 반영된 상태다.
검찰 수사가 잘못됐다면 재심 청구 절차를 밟으면 되지만 민주당은 공개적으로 법원을 압박하는 수단을 택했다. 송기헌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 전 총리 사건을 보면 판사들의 인권 감수성이 미약하지 않나 생각한다. 수사 과정에서 법원이 아무런 인식이 없었다는 게 이상하다”며 법원의 잘못을 기정사실화했다.

가속화되는 세력화 시도…“갈등 증폭, 퇴행적 정치”
민주당은 법원의 판단조차 지지층 결집에 활용하며 세력화를 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8만명의 극렬 권리당원을 기반으로 문재인정부의 레임덕을 막고 장기집권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내년 재보선과 내후년 대선을 앞두고 더욱 가속화된다는 시각도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24일 “정당이 법원 판결에 대해 ‘너무 무겁다’ ‘가볍다’ 등 비판은 할 수 있지만 민주당 행태는 그 단계를 넘었다”며 “조 전 장관 등 주요 인물에 대한 편향적인 두둔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 교수 판결을 두고 민주당이 또 지지층 결집 정치를 하려는 건데 민심에도 한계가 있다”며 “법리를 다퉈야 하는데 여당이 추임새만 넣으며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갈등을 완화해야할 사람들이 퇴행적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민주당의 반응은 ‘올바르지 않다’는 수준이 아니라 자기들이 아예 결론을 내려놓고 판결이 그와 다르면 ‘사법 개혁해야 한다’고 나서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지지층이 결집한) ‘조국 사태’의 학습효과 보다는 오히려 ‘박근혜 사태’에 대한 학습효과를 따져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민주당은 ‘선출된 권력’의 정당성을 강조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보다 더 많은 득표율로 당선됐던 선출 권력”이라며 “그럼에도 국민들의 신뢰를 잃으면서 몰락했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고 마음대로 단언해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강준구 박재현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