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는 손님 뒤로 ‘메리 크리스마스’ 외치는 사장님

입력 2020-12-25 04:00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한 '5인 이상 모임 금지' 조치가 시행 중인 가운데 24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인근 식당가에 배달 자전거가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음식점, 상점 등 자영업자에게 크리스마스 즈음은 한해 중 가장 바빠야 할 때다. 그러나 올해 는 크리스마스 전날인 이브까지 많은 사장님들이 번잡한 느낌을 전혀 느낄 수 없다고 했다. 일부는 “크리스마스가 온 줄 몰랐다”며 놀라기도 했다. 자영업자가 모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24일 그런 사장님들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너무 한가해 몸 둘 바를 모르는 사장님들은 이 커뮤니티에 댓글을 달며 서로를 위로했다. 한 사장님이 “이 글을 보시는 사장님들”이라는 제목에 “다들 한가하시니 보시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남기자 “이 시간에 시간이 남아 자영업자 카페에 들어 온 것도 황당하고 어이없다”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주문이 하나도 없다” “회의감이 들고 울고 싶다” “이 카페에 글 올릴 시간이 없어서 정상인데 연말에 여기에 글 쓰고 있다는 거 자체가 암울하다” 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자영업자 커뮤니티인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자영업자의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온라인 캡처



또 다른 사장님은 “작년 이브에는 엄청 바빴는데, 지금은 직원들 다 놀고 있다”면서 크리스마스를 대비해 모든 직원을 출근하라고 지시했지만 내일 장사가 되지 않을까봐 걱정했다. 이 글에는 “안 부르자니 불안해 어쩔 수 없다” “테이크아웃 용기를 많이 준비하긴 했지만 다 내려놓은 상태” “장사 시작하고 연말 이렇게 손님 없기는 처음이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내일이 크리스마스였는지 자각하지 못한 한 사장님은 “2020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올해를 버텼다며 12월이구나 싶어 12월 10일쯤 됐으려나 했는데 조금 전 아들래미가 크리스마스 선물은 뭐냐고 물어서 깜짝 놀랐다”고 썼다. 그는 휴대전화를 바꿔 달라는 이야기를 1년 내내 한 아들에게 내년 졸업 선물로 휴대전화를 사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마음 아파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는 18일 오후 광주 남구 양림동 펭귄마을의 거리가 한적하다. 연합뉴스


휑한 매장에 홀로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고 한 사장님은 “마음을 비웠는데 장부를 보니 씁쓸해졌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려 한다”고 했다. 이 글에는 “내일은 바쁠거다”며 서로를 응원하며 다독이는 댓글이 줄줄이 이어졌다.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오는 24일부터 식당에 5인 이상 예약과 입장이 금지되는 등의 특별방역대책을 발표한 22일 서울 서초구의 한 식당에 손님이 크게 줄어 있다. 식당 관계자는 "코로나19 시작 때부터 그랬지만 최근 거리두기 2.5단계 이후부터 더 손님이 줄었다"고 밝혔다. 뉴시스


영업 불가 시간인 오후 9시가 임박해 매장에서 나가 달라고 요구했다가 취객 손님과 실랑이를 한 영상을 공개하면서 속상한 마음을 토로한 한 사장님은 “욕을 하면서 지나가는 손님을 지켜보던 다른 손님이 힘내라며 위로하고 그 고객에게 들으라고 ‘또 오겠다. 맛있게 먹었다’고 하는데 울고 싶더라”고 하소연했다. 영상에는 “(손님에게)양해를 구해야지 나가라고 하면 되냐” “(내가)9시 넘어까지 먹었다고 (이 가게를)신고하면 되냐” “골목식당 좀 보셔야 될 거 같다” “웃긴다. 씨X” 등의 취객 손님에 험담을 듣고도 “고생 많으시다”는 다른 손님의 응원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치는 사장님의 음성이 나온다. “힘내시라”는 응원 댓글에 사장님은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손님들이 더 많다” “빨리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등의 말을 남겼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