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유럽연합(EU)과의 포괄적투자협정을 연내 마무리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프랑스와 폴란드 등 EU 주요 회원국이 중국의 강제 노동을 문제 삼아 협정 체결에 반대하면서 협상 막바지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도 유럽을 향해 ‘미국과 먼저 협의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24일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리커창 중국 총리는 전날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와 각각 전화 통화를 하고 중‧EU 협정 체결을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리 총리는 “중국은 EU와 함께 투자협정의 조기 타결을 추진할 용의가 있다”며 “중국은 기후변화 대응, 녹색성장, 투자협정 협상 등의 분야에서 유럽 측과 상호 이익이 되는 협력을 추진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 총리는 프랑스와 폴란드가 중국의 강제 노동을 이유로 협정 체결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다른 국가들을 상대로 설득 작업에 나섰다. 프랑크 리에스테르 프랑스 외교부 무역‧유치 담당장관은 최근 르몽드 인터뷰에서 “중국이 강제 노동 금지를 약속하지 않으면 중국에 대한 투자를 촉진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투자협정과 관련해 우리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이 있다”며 “중국이 강제 노동을 금지하는 국제협약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 협정은 동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투자, 무역, 공공조달, 지속가능한 개발, 인권 등 모든 분야에서 동시에 나아가야 한다”며 “중국과의 무역 거래는 특히 위구르인에 대한 강제 노동에 대항하는 지렛대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즈비그니에프 라우 폴란드 외교장관도 “유럽은 중국과 상호 이익이 되는 포괄적 합의를 모색해야 한다”며 “더 많은 협의와 투명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U 내부에서는 강제 노동 문제 외에도 중국 시장에 진출한 유럽 회사들이 중국 정부 결정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국유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큰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의 집중적인 외교 행보는 한 달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해 유럽과 중국 정책을 조율하기 전 협정을 체결하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중국으로선 조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 관계를 복원하고 대중 공동 노선을 취하기 전 유럽과 협정을 마무리짓는 게 최선이다. 그러려면 EU 내 영향력이 큰 독일과 프랑스를 움직여야 하는데, 프랑스가 공개적으로 제동을 걸면서 연내 타결은 불투명하게 됐다.
여기에 미국도 가세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한 제이크 설리번은 지난 21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바이든·해리스 행정부는 중국의 경제 관행에 관한 우려를 놓고 유럽 파트너들과 초기에 협의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적었다. 중국과 협정을 체결하기 전에 미국과 먼저 협의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