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이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인텔이 기술적으로 정체된 사이 IT 공룡들이 자체 설계한 칩세트를 하나둘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초미세 공정을 주도하는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들의 약진도 한몫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서버와 서피스PC용 CPU를 직접 만들 계획을 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ARM 코어를 활용해 직접 설계하는 방식이다.
인텔에 대한 CPU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것으로 수십 년간 이어온 ‘윈텔 동맹’이 약해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윈텔은 MS 운영체제 윈도와 인텔 CPU가 탑재된 컴퓨터를 의미한다.
구글은 2016년 처음 인공지능(AI) 프로세서를 출시했고, 아마존과 페이스북도 AI 칩세트 개발에 뛰어들었다. 자동차 업체 테슬라도 이 분야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칩세트 시장에서 인텔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주요 업체들이 자체 개발로 선회하는 건 크게 3가지 이유로 분석된다.
우선 ‘무어의 법칙’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다. 무어의 법칙은 18개월마다 회로 집적도 2배씩 높아진다는 것으로, 인텔 칩셋 속도가 지속적으로 빨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 몇년 사이 인텔의 미세공정 전환이 늦어지면서 이전과 같은 성능 향상이 어려워졌다. 인텔 제품을 쓰던 업체들은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칩셋에 요구하는 성능이 달라졌다는 것도 이유다. 인텔 칩세트는 단순 연산을 빠르게 할 수는 있지만, 인공지능(AI)과 같이 복잡한 연산은 한계를 보인다.
클라우드, AI 등의 수요가 점점 커지면서 아마존, 구글 등은 머신러닝 등에 특화된 칩세트를 직접 설계해 쓰기 시작했다.
이들이 직접 칩셋을 만들 수 있는 배경에는 TSMC, 삼성전자와 같은 파운드리 업체의 기술적 성장이 있다.
TSMC와 삼성전자는 초미세 공정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현재 양사 모두 5나노미터 공정까지 양산에 들어갔고 향후 4나노, 3나노 공정도 적용할 계획이다.
반도체는 공정이 미세해질수록 전력 소모가 적고 성능은 높일 수 있다. 14나노에 머물고 있는 인텔보다 TSMC나 삼성전자에 제작을 의뢰하는 게 전력 소모도 줄이고 성능은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여기에 직접 설계하기 때문에 원하는 기능을 넣고 빼기도 쉽다.
애플의 성공이 다른 업체들을 자극한 측면도 있다. 애플은 아이폰에 들어간 A시리즈로 성공가도를 달렸고, 최근에는 PC용 M1 칩세트를 내놔 주목을 끌고 있다. M1 칩세트는 기존 인텔 제품 보다 성능이 훨씬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4일 IT 업계 관계자는 “칩세트를 직접 만들면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핵심경쟁력을 내재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면서 “자기 두뇌는 직접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앞으로도 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