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4차 산업혁명을 가속화, 가족화, 가축화시키고 있다. 변화의 속도를 높였고, 수많은 동류 집단의 가족화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또한 잘 사육된 특정 niche(틈새 시장, 특화의 우위 점령)의 가축 집단은 ‘사육이 안 되는’ 다른 가축들의 접근은 허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기술 집약적인 산업의 발달과 함께 또 다른 놀라운 발전과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생각 산업, Idea Industry’이라는 새로운 산업이다. ‘생각’ 혹은 좀더 고상한 표현으로는 ‘사상’도 생각에서 시작됐다. 그 생각을 시장에 내다놓을 수준이 되면 사상이란 아이템으로 구매 종목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유주의란 물품들은 지난 몇 백년 동안 소비자들 덕분에 꾸준히 잘 팔렸다.
그럼 지금의 ‘생각(사상) 산업’은 어떤 상황인가? 이에 대해 보스톤에 있는 명문 Tufts 대학의 국제정치학자 다니엘 드레즈너 (Daniel W. Drezner) 교수가 벌써 3년 전(2017년)에 ‘사상 산업, The Ideas Industry’라는 책을 냈다. 그는 “비관주의자들, 당파주의자들, 재력을 동원할 수 있는 금권주의자들이 사상 시장을 어떻게 바꾸어 놓고 있는지”를 관찰했다.
시간의 태엽을 앞으로 휘익 급발진시켜 한국으로 옮겨놓고 보면 그의 관찰이 예언자 수준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옛날(사실 몇 초 전만 해도 옛날이긴 하나 ‘왕년’ 정도의 좀 두터운 시간의 축적이 있은 연후에)의 이름깨나 알려진 공공 사상가들 (대기업 수준의)은 점잖은 학술지나 세계적 권위를 가진 학계에 드문드문 발표를 해왔으나, 지금의 사상가들은 한두 가지 핫 아이템만 있으면 장사가 잘된다고 예견했다. 이들 ‘생각 장삿꾼’들에 뒷돈을 대주는 이들이 누군가? 한국민 60~70%(어머어마한 숫자의 소비자)가 유튜브(외에도 유명 채널들)를 하루에도 상당 시간 소비하고 있으며 (코로나 덕분에? 집콕이 늘어날수록 가속도) 이들이 구매하는(subscribe) 시장의 규모도 놀랍다.
‘잡상인’이란 말은 유교적 전통에서 나온 비하 표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멀티 시대이기에, 잡상인이 오히려 변화에 민첩하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게 된 3대 원인을 드레즈너는 잘 짚어내고 있다.
첫째는 전문가 영역의 급속 축소, 둘째는 정치의 급격한 양극화, 셋째는 막강한 돈과 권력(금권정치)의 정략 결혼이다. 한국을 보면 답이 분명하다. 전통적인 권위를 가진 전문가들이 이제는 대부분 자의반 타의반 귀양 가고 없다. 대신 각 분야에서 ‘생각의 잡상인들’이 전문적인 수준으로 마켓팅도 잘한다. 자신들만의 튀는 주장이 생각과 사상의 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된다. ‘당근 마켓’처럼 자기들만의 동네나 자기네들의 부족 안에서 통하는 권위가 훨씬 이익 마진도 높다.
정치의 양극화는 더 말해 무엇하랴. 양극단의 귀퉁이를 붙잡을수록 마진도 높고 팔로어들도 많다. 어중간하게 JSA에서 근무 서는 보초병은 드물다. Trumpism, 극우, 극좌가 시선을 끈다. ‘잡상인 출입금지’ 간판은 실효가 없다. 오히려 ‘생각 잡상인 환영’ 벼룩 시장이 더 잘 된다. 뼈대 있던 정당, 이념, 사상적 계보 따위는 폐기물로 분리수거됐다. 이 거대한 환경 재활용 시스템에 돈과 권력은 필수 원자재. 이 원자재는 특정 국가에 집중되어 있는 희토류 종류가 아니다. 글로벌이라는 한통속에서 유통 속도와 유통 마진이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다면 ‘생각 산업’의 엄청난 구조 조정에서 교회는 면세 구역일까? 집단 면역이 잘 된 특수 집단일까?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구조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 교회를 솔직하게 들여다 보라. 누가 어떻게 (아직도) 남아있고, 누가 얼마나 (그래도) 교회로 더 들어올까? 교회가 정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엉터리 등록 교인(이미 천국 간 숫자가 지금 다른 교회에 잘 나가고 있는 숫자보다 훨씬 많음에도) 명부 펴놓고, 애꿎은 젊은 사역자들을 득달해서는 안 된다. 생각의 잡상인들을 신천지처럼 출입금지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잘 믿는(?) 교인들도 생각 산업에서 이미 수많은 거래를 하고 있다. 이들을 생각의 잡상인들로 몰아버려서는 안 된다. 이들은 중등부도 아니고, 이단도 아니다. 이들을 그 정도에서 취급할수록 교회의 앞날은 닫힌다. 이들이야말로 정말 전도해야 될 교회의 미래이다.
더 이상 옛날의 환상에 사로잡혀 대형, 중형, 소형, 미자립 구분을 할 필요가 없다. 진짜 해야할 구분은 시장성 즉, 생명력이다. 어떤 수준의 교회인지를 세상이 더 잘 안다. 특히 교회 안에 나와야 하는 이들(어떤 형태로든 돈과 권력의 사슬에 엮여있는)에게 희망 고문을 중단해야 한다. 그럴 시간과 그 노력을 생각의 시장에서 장보고 있는 정말 불쌍한 영혼들을 불러올 수 있는 생각부터 해야 한다. 생각의 시간을 한때의 영광이나 신화 제조에 묶어두지 말고, 하나님 앞과 성도들 앞에서 생각을 정말 새롭게 해야 한다. 가짜 장부와 허황된 구호는 유통 기한이 지났다. ‘아직까지는 괜찮다’는 생각이 솔직히 누구를 위한 생각인가? 중세의 썩은 성직자들이 ‘아직 괜찮다’고 수군대고 있을 때, 개혁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을 근대의 활발한 시장에서 어떻게 유통시켰는지를 보면 답은 분명하다. 아직도 성냥불을 긋고 있다면, 숲을 태울 생각의 불길이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한 ‘부흥’이다.
아직까지는 괜찮은 교회 높은 분들이 ‘생각의 감옥’에서 나와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설교하기보다는 본인부터 제발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세상보다 더 심하게 세상을 본받으면서 변화를 주문하는 것은 정말 아니다. 생각 산업 구조 개혁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교회도 성경대로를 제발 제대로 해보자. 말만 ’성경적, 복음적, 보수적’이라 하는 ‘노 쇼’ 주문 제작을 중단하고 ‘생각의 분별’부터 정직하게 하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1-2)
최상준 (한세대학교 역사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