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민주투사 네이선 로 “美 말고 영국에 망명 신청한 이유는…”

입력 2020-12-22 17:37 수정 2020-12-22 17:49
홍콩 민주화 운동가 네이선 로가 2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기고한 글. 그는 "중국 공산당이 민주주의에 얼마나 큰 위협인지 경종을 울리기 위해 망명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영국 가디언 홈페이지 캡처

지난 6월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직전 영국으로 떠났던 홍콩의 민주화 운동가 네이선 로(26)가 망명을 신청했다. 그는 미국 워싱턴이나 뉴욕이 아닌 영국 런던을 망명지로 택한 데 대해 “중국 공산당이 얼마나 큰 위협인지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로는 2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영국에 장기간 머물러야 하는지에 대해 고심해왔고 이제 결정을 내렸다”며 “영국 정부에 망명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적었다. 그는 ‘왜 미국이 아닌 영국인가’라고 질문을 던진 뒤 “중국의 권위주의적 팽창에 대응하는 서방의 전략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로는 “미국이 2018년 중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하며 중국 공산당을 분명한 위협으로 규정했을 때 중국의 관심은 유럽연합(EU)으로 빠르게 옮겨갔다”며 “중국은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쉘에서도 같은 움직임이 일어나는 걸 원치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EU와 동맹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평화중재자를 자임하고 미국 일방주의의 대안을 보여주려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미국은 중국에 대해 확고한 접근법을 채택했고 ‘중국은 적’이라는 초당적 합의가 있지만 영국과 EU에선 그렇지 않다”며 “이것이 내가 런던행 비행기를 타고 정치적 난민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제적 이득에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잃을 것이 너무 많다”고도 했다.

로는 기고문과 별개로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홍콩 여권을 갱신하기 위해 중국 대사관에 갈 경우 체포돼 중국으로 송환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여권이나 신분증 없이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경험이 홍콩에 있는 동료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 홍콩 망명자들에 대우와 관련해 영국 정부에 조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는 2016년 홍콩 입법회 의원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홍콩 기본법에 부합하는 의원선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듬해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그는 홍콩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2014년 9월부터 두 달 넘게 이어진 우산혁명의 주역으로 꼽힌다. 우산혁명을 함께 주도했던 조슈아 웡(24)과 아그네스 차우(23)는 최근 불법집회 조직·선동·가담 혐의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영국이 로의 망명을 허가할지는 미지수다. 영국은 홍콩 보안법 제정에 줄곧 반대 목소리를 내고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해왔지만 망명 허가는 또 다른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라우시우카이 중국 홍콩·마카오연구협회 부회장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중국이 보는 로는 분리주의자이자 범죄자이며 도망자”라며 “만약 영국이 로에게 정치적 망명을 허가한다면 그것은 분명 중국을 화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중문대 학생들이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민주화 시위 참여 1주년을 맞아 교정에 설치된 '민주주의 여신상' 주변에서 검정색 풍선과 플래카드 등을 들고 기념집회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홍콩 보안법 시행에 맞서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를 폐지하며 중국을 압박했던 미국도 정작 홍콩 반정부 인사들의 신변 보호 요청을 거절했던 전례가 있다. 지난 10월 토니 청 등 홍콩 반정부 인사들이 홍콩 주재 미 총영사관을 찾아 신변 보호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당시 홍콩 언론이 보도했다. SCMP는 “미국이 홍콩 반정부 활동가를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한계선을 정해 놓았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