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코로나19 백신 확보 논란과 관련해 “우리도 특별히 늦지 않게 국민들께 백신 접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고, 또 준비를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요즘 백신 때문에 걱정들이 많다”며 “백신을 생산한 나라에서 많은 재정 지원과 행정 지원을 해서 백신을 개발했기 때문에 그쪽 나라에서 먼저 접종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5부요인 초청 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말했다. 미국 등 주요국들이 백신 접종을 시작했지만, 한국은 백신 확보가 지연됐다는 비판을 우회 반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전세계가 백신 확보 경쟁 중인 상황에서 그동안 문 대통령의 백신 메시지가 그동안 ‘자체 개발’과 ‘공공재’ 측면에만 맞춰져 있어 백신 확보 ‘타이밍’이 늦춰진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선진국들은 백신 접종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지난주부터 공식 접종이 시작됐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도 21일 화이자 백신을 접종했다. 모더나 백신도 미국에서 긴급사용 승인을 받고 공급될 예정이다. 영국도 지난 2일 세계에서 처음으로 화이자 백신의 긴급사용을 승인했고, 유럽연합(EU) 27개국도 조만간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할 예정이다. 백신 개발국이 아닌 싱가포르 뉴질랜드 카타르 이스라엘 등도 화이자 백신을 확보했다.
반면 한국은 접종이 시작된 화이자, 모더나 백신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만 확보한 상태다. 접종 시점도 내년 1분기는 돼야 가능하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국내 회의에선 백신의 ‘자체 개발’과 대외적으로는 ‘백신은 공공재’라는 측면에 방점을 찍어왔다. 청와대가 처음으로 백신을 논의한 건 지난 2월 방역 전문가들과의 간담회였는데 당시 청와대는 “치료제, 백신 개발 등 장기 대책에 대한 논의도 진행됐다”고 밝혔다. 당시 코로나 사태 초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백신 개발 논의 자체가 늦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구의 제약 회사들이 백신 개발에 앞서나가는 상황에서도 문 대통령 메시지는 ‘자체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15일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현장 간담회에서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이 안전성과 효능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감염병 대응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도, 백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개발 성공이 필요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다자 정상회의에서도 백신을 두고 ‘공공재’ ‘공정한 접근’ 등의 표현을 썼다. 문 대통령은 3월 G20 특별 화상정상회의에서 “G20 회원국들이 코로나19 방역 경험과 임상 데이터를 공유하고,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위해 힘을 모아 나가야 하며, 보건 의료가 취약한 국가들에 대한 지원을 위해 협력해 나갈 것”을 제안했다.
지난달 제주포럼 기조연설에서도 “백신이 인류를 위한 공공재로 공평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여러분께서 함께 지혜를 모아주시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당위론’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각국에서 ‘백신 민족주의’ 바람이 일고 있는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이상론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에게 백신 확보 상황을 실시간 보고 받으며 확보를 채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