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야했어” 피해자 탓한 ‘성폭행 미수’ 사건 결말

입력 2020-12-22 13:41 수정 2020-12-22 14:06
게티이미지뱅크

아르바이트생을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직원은 물론 사건을 무마하려 했던 공공기관도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례적인 판결이 나왔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민사17단독 김유진 판사는 아르바이트생 A씨가 직원 B씨와 공공기관을 상대로 낸 5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들이 공동해 25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대학원생인 A씨는 2016년 여름 서울의 한 공공기관에서 일하던 중 같은 팀 상사 B씨로부터 “주말에도 근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돌아오는 일요일 사무실에 출근했고 B씨 역시 그날 오후 회사에 나타났다.

B씨는 사무실에 단둘이 있는 상황을 이용해 A씨를 성폭행하려 했다. 그러나 A씨의 격렬한 저항에 막혔고 미수에 그쳤다. 이 사건으로 B씨는 대법원에서 징역 1년6개월형을 확정받았다.

당시 가까스로 현장에서 벗어난 A씨는 회사에 신고했으나 팀장은 이를 무마하기에 급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팀장은 “B씨가 처벌받으면 나까지 불이익을 받으니 그냥 넘어가자”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A씨를 도우려는 다른 팀원까지 회유했고 급기야 “원래부터 (A씨의) 목소리가 야했다”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A씨는 결국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아 도움을 호소하며 해당 공공기관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B씨와 공공기관을 상대로 하는 정신적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다.

재판 과정에서 해당 공공기관은 “범죄 행위가 휴일에 단둘이 있을 때 발생했고 B씨는 인사권한이 없다”며 “개인적인 일탈에 불과해 사무집행과 관련성이 없고 사용자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하지만 김 판사는 “B씨의 불법 행위가 사무집행 자체로 볼 수는 없으나 A씨가 실질적으로 B씨의 업무 지시를 받고 있었다”며 “비록 휴일이기는 하나 근무 장소에서 공공기관 업무수행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사무집행 관련성을 인정했다.

이어 “해당 공공기관이 성희롱 예방 교육 등을 실시하고 B씨를 직원해제 발령했으며 사실확인 등을 거쳐 해임 처분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B씨의 성추행 정도에 비춰보면 이 같은 조치만으로 B씨가 성추행을 하지 않도록 그 선임 및 사무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다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