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와 다른’ 민주당… ‘구의역 막말’ 나향욱엔 사퇴 요구

입력 2020-12-22 11:52 수정 2020-12-22 16:12

더불어민주당이 ‘구의역 막말’ 논란의 당사자인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를 연일 엄호하면서 또다시 ‘내로남불’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6년 ‘민중은 개·돼지’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구의역 사고 관련 발언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여권 인사들이 그때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국민일보가 22일 당시 국회 회의록과 언론 인터뷰 등을 확인한 결과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인사들은 나 전 기획관을 강하게 질타하면서 당사자 파면에 이어 교육부 장관 사퇴까지 촉구했다. 그랬던 민주당은 4년 뒤에는 공식 석상에서 막말을 한 장관 후보자에 대한 비판을 ‘정치 공세’로 규정하고 그대로 임명하려 하고 있다.


2016년 당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한 방송에 출연해 “(나 전 기획관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보다 더 놀라웠던 발언은 구의역 발언”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공감의 시대다. 사람이라면 나하고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라도 불행이나 고통을 겪으면 연민이 생기고 공감하고 그 아픔에 같이 젖어 든다”며 “눈물도 흘리는 게 인간의 본성인데, 그걸 어떻게 저렇게 말하느냐”고 비판했다.

이는 나 전 기획관이 2016년 7월 한 일간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에 대해 “그게 어떻게 내 자식처럼 생각되나. 그게 자기 자식 일처럼 생각이 되냐”고 말했던 것을 겨냥한 것이다. 당시 나 전 기획관은 ‘우리는 내 자식처럼 가슴이 아프다’는 기자들의 발언에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이 자리에서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 등의 막말도 함께 나왔다.

나향욱보다 더 엄중하게 봐야 할 변창흠

당시 민주당의 논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취중 발언이나 실언이라도 평소의 인식이 드러난 것이어서 문제이고, 정책 입안자의 사고는 정책에 반영돼 결과적으로 정책 불신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은 발언 경위에 대한 진상조사와 당사자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 나아가 교육부 장관의 ‘정치적 책임’을 물어 사퇴까지 요구했다.


20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민주당 간사였던 도종환 의원은 2016년 7월 국회 교문위 전체회의에서 나 전 기획관의 구의역 막말을 언급하면서 “연민이 없는 사람이 정책을 입안하고 있다면 이건 1%를 위한 정책에 그칠 것”이라며 “국민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변 후보자 발언은 사석에서 음주 상태로 발언했던 나 전 기획관과는 달리 공식 회의 자리에서 나왔다. 변 후보자가 “(피해자 김모군) 걔만 조금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에 사람이 죽은 것이고 이게 시정 전체를 흔들었다”고 발언한 것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재임 시절인 2016년 6월 내부 회의 자리였다. 2급 공무원(정책기획관)이 아니라 국무위원인 장관 후보자의 과거 발언이라는 점 등에서 더 문제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 “그런 평소의 인식 자체가 문제다”

민주당은 당시 나 전 기획관의 인식 자체를 문제 삼았다. 아무리 사석에서 술에 취한 채 나온 발언이라 해도 평소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고, 그런 인식 자체가 공무원으로서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0대 의원이던 2016년 교문위 회의에서 “나 기획관의 발언은 그야말로 반헌법적이고 반교육적”이라면서 “공직자로서 있을 수 없는 발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개·돼지 취급받은 국민의 심정은, 도대체 어떻게 누구에게 이 책임을 묻고 해결해야 하느냐”고 따졌다.

조승래 의원도 교문위에서 “국정교과서 여론이 바뀌는 걸 보면서 영화 ‘내부자’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 개돼지 발언을 하셨다. 이건 아주 확실한 자기 판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언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이런 기본적인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그런 대화가 가능했다”고 꼬집었다.

전재수 의원은 “국민들께서 참담함을 넘어서 슬퍼하고 계신다”며 “정말 슬픈 일이고 어떻게 고위공직자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지 백 번, 천 번을 양보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정책 입안자의 사고는 정책에 녹아든다”

민주당은 공직자의 부적절한 인식과 발언은 정책에 대한 신뢰로 연결된다고 봤다. 공직자의 부적절한 인식이 정책에 자연스럽게 반영되고, 결국 정책에 대한 불신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논란이 되는 변 후보자의 과거 발언 역시 하나같이 자신이 장관으로 내정된 국토부의 주요 업무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분야다. ‘못 사는 사람들’이 산다는 임대주택은 부동산 정책의 주요 부분이고, ‘걔가 조금만 신경 썼으면 사고가 안 났다’는 지하철역은 시민들이 매일 마주하는 교통의 현장이다.


현재 문재인정부 청와대에서 교육비서관을 맡은 박경미 전 의원은 당시 교문위 회의에서 “정책기획관은 교육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브레인이고 기획관의 철학이 교육 정책에 스며든다는 면에서 취중진담이 매우 우려가 된다”며 “그분의 사고가 이 교육정책들에 다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저희도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당시 민주당은 나 전 기획관 문제가 단순히 부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전체를 향한 불신으로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했었다. 전재수 의원은 “이게 교육부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박근혜정부에서 추진해 왔던 누리과정, 국정 역사 교과서 문제 전부 정책기획관 업무 영역 아니냐”면서 “이 모든 영역에 대한 정책의 신뢰가 한순간 다 날아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정부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져 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장관직 사퇴도 고려해야”

민주당은 2급 공무원(국장급)이던 나 전 기획관 발언의 책임을 당시 교육부 장관에게 물으면서 공개적으로 사퇴까지 요구했다. 전재수 의원은 “교육부 장관의 책임도 크다”며 “장관께서는 어떤 도의적인 책임이라든지 아니면 교육부 수장으로서 느끼고 있는 책임을 지신다든지 이런 생각은 하고 있지 않느냐”고 압박했다. 김민기 의원은 구체적으로 “그 모든 책임에는 장관직 사퇴까지도 고려된 것이냐”고 물었다.

대통령도 겨냥했다. 조승래 의원은 “임용권자의 의지에 의해서 당장 직위해제 조치를 해야 하는 게 맞다”면서 “임용권자인 대통령께 당장 직위해제를 요청하실 의향 있느냐”고 교육부 장관을 질타했다.

현재 민주당 최고위원을 맡은 신동근 의원은 당시 “이런 부적격자를, 반헌법적인 발상하는 사람을 걸러내지 못했습니까”라며 “인사시스템에 문제가 있냐”고 따졌다.

변창흠 해명, 화가 풀릴까 쌓일까

야당은 23일 열릴 인사청문회에서 변 후보자에게 막말 발언의 경위를 캐묻는 등 도덕성을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변 후보자가 답변 과정에서 어떤 해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지금까지 대처해온 태도로 미뤄 볼 때 변 후보자가 과연 성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대처할 수 있을지 여권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정치권에선 변 후보자가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시각도 있다. 직접 발언의 취지가 그런 게 아니었다고 해명하자니 기록이 분명하게 남아있어 궁색하고, 막말 발언을 인정하자니 스스로 장관 후보자 자격에 미달하는 것을 시인하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과거 나 전 기획관은 국회 상임위에 출석해 눈물까지 흘리며 “죽을죄를 지었다”고 사죄했지만 끝내 용서받지 못했다.


민주당에서도 사과 필요성이 거론되자 변 후보자는 청문회를 이틀 앞둔 지난 21일 구의역 김군의 동료들에게 “만나서 사과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 하지만 이들은 “사과를 받아야 할 대상은 우리가 아니라 김군”이라며 “김군에게 직접 사과하기 바란다”며 면담을 거절했다. 그러면서 “변 후보자의 사퇴가 분명한 입장이다. 지금이라도 사퇴하라”고 재차 요구했다.

민주당은 ‘사과해야 한다’고 했고, 변 후보자도 ‘사과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구의역 김군의 동료들은 ‘사퇴가 사과’라고 답한 것이다. 변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소상히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김판 이현우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