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18일 저녁 단 세 문장에 그친 ‘사과문’을 발표했다. 국민일보 보도로 2016년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재직 시절의 부적절한 발언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벌어진 이후다. 보도 전 변 후보자 본인과 인사청문회 준비단에 수 차례 해명을 요구했지만 아무런 답변도 받을 수 없었다.
아마도 보도 이후 여론의 동향을 살핀 것으로 추정된다. 인사청문회 준비단 관계자도 “계속 이어지는 보도를 보고 인식이 바뀐 게 아닌가 싶다. 전반적으로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준비단에 별다른 언급 없이 “사과를 해야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진심어린 사과’였다면 해명 요청 단계나, 적어도 보도 직후에 나왔을테다. ‘3줄 사과’는 온라인 보도 이후 7시간이나 지난 뒤에 나왔다. 그 사이 수천 건의 비판 댓글이 달렸다. 여론에 떠밀린 사과에 진심이 담길 리 만무하다. 역시나 구의역 김군의 동료는 “논란이 된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한 수단일 뿐 사과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주말 내내 변 후보자에게 물었다. 역시나 답이 없다. 그 사이 지인 채용 의혹, 태양광 사업 유착 의혹에 대해서는 열심히 해명 자료를 배포했다. 준비단 관계자는 “몇 마디 더 하면 또 논란이 될 수도 있으니 성찰한 다음에 청문회에서 말씀드리겠다”고 변 후보자의 입장을 대변했다. 역시나 ‘사과’가 아니라 ‘계산’이 먼저였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23일 인사청문회에서 그는 어떤 표정으로 어떤 설명을 내놓을까. 힌트는 21일 국회에 제출된 서면 답변서에 담겨 있다. 그는 그간 제기된 주요 의혹에 대해 ‘거짓’을 섞어 상황을 교묘하게 설명했다.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에 대해서는 “본인은 문건과 관련 없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서울시 감사에서도 본인은 무관하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적었다. 거짓이다. 국민일보가 확인한 서울시 감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이 문건의 작성 주체와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따라서 변 후보자가 문건과 관련이 없다는 게 ‘밝혀진 적’은 없다. 서울시는 아예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음해용 괴문서’라고 항변하는 변 후보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 것도 입증된 것이 없다’는 게 분명한 사실이다.
서울시의 자체 조사는 사실상 부실 조사였다. 의혹의 중심에 섰던 변 후보자 본인에 대한 대면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변 후보자는 “대면 조사 없이도 사실 관계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국회에 답했다. 역시 거짓이다. 서울시 관계자도 “시 차원의 행정 조사라 한계가 많을 수 밖에 없다.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다”고 자인했다.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 임원을 속여 사표를 받았다는 ‘기망 사표 사건’에 대해서는 “경영진이 책임을 통감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거짓이다. 1심 판결문에는 “원고가 한 사직의 의사표시는 피고의 대표자인 변창흠의 기망에 의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적혀있다. 그리고 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은 적이 없다.
2심에서는 화해권고결정이 나왔는데 변 후보자는 이를 두고 “SH의 주장이 반영됐다”며 “다만 원고 측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여 위로금 차원에서 1심보다 감액된 3100만원을 지급하기로 조정이 이뤄졌다”고 답했다. 거짓이다.
1심은 변 후보자에게 속아 사표를 제출하지 않았다면 받을 수 있었던 ‘보수’(급여) 4400만원을 원고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 화해권고결정에서 액수가 3100만원으로 줄긴 줄었다. 그런데 바로 뒤의 괄호 안에는 ‘원천징수 공제 후 기준’이라고 적혀있다. 민사소송법에 따르면 화해권고결정은 원고의 ‘청구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내려질 수 있다. 원고는 보수를 달라고 청구했지, 위로금을 달라고 청구한 적이 없다.
공사가 원고에게 지급한 3100만원은 ‘위로금’이 아니라 ‘보수’이자, 변 후보자의 ‘거짓말’에 대한 법의 심판이었다. 판결문에 적힌 ‘기망’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속여 넘김”이다. 청문회에서 그가 언급할 사과에는 부디 ‘진심’이 담기길 바라본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