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직전의 아파트 ‘그린홈’에선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괴물을 끄집어내는 건 인간의 욕망이다. ‘괴물=절대악’이라는 단순함과도 거리가 멀다. 괴물을 인간과 공존 가능한 입체적 크리처로 묘사하면서 편견을 깨뜨린다. 파멸은 인간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주제 의식은 극 전반에 묵직하게 이어진다. 작품의 메시지는 다음 대사에 녹아있다. “가장 짙은 어둠도 가장 흐린 빛에 사라진다.” 그린홈은 끝내 폐허가 되지만 그럼에도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10부작)은 괴물을 앞세우지만 실은 인간의 섬뜩함을 이야기한다. 동시에 한줄기 희망도 잊지 않는다.
이응복 감독은 2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인간적인 부분을 가장 한국적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며 “괴물로 발현되는 인간의 극단적 욕망을 통해 문제의식을 느끼게 하는 드라마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8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스위트홈은 그린홈에서 인간의 욕망으로 탄생한 괴물과의 사투를 그리는 아포칼립스(인류멸망) 크리처물이다.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등을 만든 이 감독의 넷플릭스 데뷔작으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극은 히키코모리 차현수(송강)가 이사 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온갖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이 살고 있지만, 현수의 욕망은 오직 죽음뿐이다. 그는 이사 온 날 자신이 죽을 날을 정하는데, 그날 일이 터진다. 이웃이 하나둘 괴물로 변한 것이다. 현수 자신도 마찬가지. 고립된 현수와 괴물화 돼가는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부산행’ ‘#살아있다’ 등 지금까지의 아포칼립스물이 생존을 말했다면, 스위트홈은 괴물의 탄생에 천착한다. 이 감독은 “어떻게 괴물을 죽이고 살아남는지보다 개인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싶었다”며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무엇이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지에 관한 질문이 극 전반에 녹아있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줘야 했다. 화면은 아파트 몇 군데를 한정적으로 비추지만 모든 인물에 흡인력 있는 서사를 부여하면서 편협하지 않게 흘러가도록 했다. 이들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연대로 뭉친다. 약자의 연대는 생존을 위해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과정으로 여겨진다.
연대는 인간에 한정되지 않는다. 괴물도 선과 악의 구별이 있다. “내 친구야, 날 도와줬어” 같은 대사에서 친구는 괴물을 의미한다. 이는 파국의 책임이 인간에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모든 괴물이 살인을 저지르진 않지만, 인간은 모든 괴물을 죽이려 한다. 다른 아포칼립스물에서 봐왔듯 진짜 무서운 건 인간이라는 메시지다. 극에선 약자로 상징되는 여성을 겁탈하고, 인간을 감금하는 중섭(허준석) 패거리가 악을 대변한다.
원작을 살리면서도 변화를 꾀한 건 새로운 여성 캐릭터다. 특수부대 출신 소방관 서이경(이시영)이다. 이 감독은 “세계관 확장을 위해 외부와 교류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며 “남성을 압도하는 여전사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성패는 괴물 구현에 달려 있다. 크리처물에 처음 도전하는 이 감독은 “아, 한국 기술이 여기까지 왔구나”라는 평가를 목표로 했다. 개인의 욕망이 각각 다른 괴물 형상으로 발현되는 만큼 일률적으로 설계할 수 없었다. ‘어벤저스’ ‘아바타’를 만든 특수제작팀과의 협력은 큰 도움이 됐다. 괴물의 모션은 김설진 안무가가 구상했다. 동물의 본능적인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었고, 직접 연근괴물도 연기했다.
이 감독은 “근육괴물처럼 인간의 형태가 아니라 사람이 연기할 수 없는 크리처 구현이 힘들었다”며 “아쉬운 점이 많지만 한국적인 크리처가 탄생했다는 점은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제 의식을 공고하게 쌓아 시즌2에 도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