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배달기사나 대리운전 기사처럼 스마트폰 앱 등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일하는 약 180만명의 플랫폼 종사자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노동계는 정부가 플랫폼 종사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또 하나의 특수 근로자로 나누려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정부는 21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에서 의결한 ‘플랫폼 종사자 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플랫폼 종사자 보호와 지원을 위한 입법을 추진하겠다”며 “일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익을 보호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려는 조치”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구인·구직 정보를 소개하는 플랫폼을 통해 일을 구하는 플랫폼 종사자는 약 179만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7.4% 수준이다. 배달기사나 대리기사처럼 플랫폼에서 직접 일을 배정받고 노무를 제공하는 협의의 플랫폼 종사자는 약 22만명(취업자의 0.9%)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평균 월 소득은 238만원이다. 대부분 근로계약을 맺지 않지만 배달 가격을 직접 결정할 수 없는 등 플랫폼 업체의 강력한 통제 속에 일을 한다.
정부는 내년 1분기 중 플랫폼 종사자 보호 입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플랫폼 종사자를 모두 노동자로 인정해 노동관계법을 일괄 적용하는 대신 노동자 인정 여부에 따라 종사자들을 구분·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플랫폼 종사자의 노동자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내년부터 전문가 중심의 고용형태 자문기구를 운영하기로 했다. 플랫폼 일자리의 고용형태 구분 방법을 검토하고 사회적 논쟁거리로 주목받는 사건은 고용형태에 관한 자문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플랫폼 종사자의 전속성(한 사업주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정도) 기준을 폐지해 내년 7월부터 산재보험·고용보험 적용을 확대하고, 1인당 최대 2000만원까지 융자·신용보증을 지원하기로 했다. 플랫폼 종사자의 16개 직종별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보급하는 내용도 대책에 담았다. 불공정거래 금지, 종사자 안전관리, 분쟁 해결 절차 등을 명확히 규정하려는 조치다. 누구나 제한 없이 배당대행업체를 설립하는 기준을 ‘배달업 등록제’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할 방침이다.
플랫폼 업체가 종사자 퇴직금 지급 등을 위해 공제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대책도 추진한다. 업체가 플랫폼 이용 수수료 일정액을 공제부금으로 납부하고 종사자가 퇴직하면 퇴직금으로 지급하는 식이다. 다만 이 경우 배달 수수료 등 인상이 불가피할 거란 우려도 나온다. 이 장관은 “정부가 공제회를 설립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업체가 중심이 돼 자율적으로 공제조합을 설립하면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을 찾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정부가 플랫폼 종사자 보호를 위한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발표하자 노동계는 반발했다. 플랫폼 종사자를 모두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해 노동관계법 보호를 받도록 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인데, 별도의 법을 만들어 보호한다는 것은 사실상 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주장이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고 “플랫폼 노동자를 또다시 ‘종사자’로 구분해 노조법 적용을 배제하고 노동권을 부정하는 특별법을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것”이라며 “보호법이라는 명목으로 노동권 배제를 고착시키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플랫폼 노동자 노동자성 인정, 노동권 보장을 위해 투쟁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추진하는 보호 대책은 본질적으로 ‘플랫폼 종사자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전제하에 별도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라며 “플랫폼 종사자를 노동권 보호의 사각지대로 내몰아 버릴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