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첫 서비스를 시작한 세계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 게임 바람의나라. 바람의나라의 초대 개발자 중 한 명이었던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이사는 대학생 시절 김진 작가의 동명의 만화를 읽으면서 이를 게임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바람의나라와 더불어 한국 1세대 MMORPG 게임으로 꼽히는 리니지와 라그나로크 역시 동명의 ‘판타지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웹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요즘에는 만화 원작의 게임을 찾아보기 더 쉽다. 노블레스, 갓오브하이스쿨, 마음의 소리 같은 인기 웹툰들은 이미 게임화가 진행됐거나 개발이 한창이다. 영화 ‘어벤져스’처럼 각기 다른 웹툰의 등장인물을 한 게임에 등장시키는 시도(히어로 칸타레)도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게임사(史)에 있어 ‘만화’와 ‘게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셈인데 게임 개발사들이 웹툰의 지식재산권(IP)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효율성이 좋다. 웹툰을 활용하면 게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 ‘스토리 라인’ ‘세계관’ 구축에 들어가는 자원과 시간을 대폭 아낄 수 있다. 한국게임산업협회 관계자는 “웹툰을 활용하면 게임의 세계관을 창출하는 과정이 무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고 말했다.
원작이 가진 지명도를 바탕으로 마케팅 비용도 낮출 수 있다. 네이버 인기 웹툰 ‘호랑이형님’을 활용한 모바일 게임의 경우 원작의 힘을 빌려 마케팅을 하기 쉽지만 새 IP의 경우 그것이 무엇인지부터 소비자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일부 게임회사들이 독자 IP를 활용한 게임들에 천문학적인 마케팅 비용을 투입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갓오브하이스쿨 등 IP 활용 게임들을 제작해 온 엔유소프트의 김영관 대표는 “(기존 IP의) 검증된 스토리로 유저 접근성을 높이면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웹툰 작품들이 보유하고 있는 탄탄한 이용자층도 게임 개발사 입장에선 매력적인 요소다. 이들이 잠재적 게임 유저군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웹툰 IP를 활용해 게임을 기획한 한 개발사 관계자에 따르면 웹툰은 장기간 연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 등의 IP보다 이용자층의 관심이 길게 지속된다는 특징이 있다. 독자층을 게임으로 옮겨오는 데 웹툰이 영화나 드라마보다 유리하다는 이야기다. 특히 기존 독자들이 웹툰의 ‘스토리’에 강하게 몰입할수록 게임에 대한 몰입도도 커지기 쉽다고 한다. 웹툰의 스토리 진행과 게임의 플레이 경험이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때문에 웹툰의 스토리라인부터 작화까지 원작의 정체성을 최대한 해치지 않고 게임에 이식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게임회사들이 웹툰 IP를 활용해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8월과 11월 두 차례 게임화를 희망하는 콘텐츠 IP와 게임업계를 연결해주는 ‘콘텐츠 지식재산(IP) 사업화 상담회’를 추진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0월에는 게임화에 적합한 웹툰 IP 6개를 선정해 게임업계 관계자를 대상으로 피칭 행사도 열었다. 콘진원은 내년에도 웹툰 IP를 활용한 게임 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해 올해 진행했던 ‘콘텐츠 IP 사업화 상담회’를 열 예정이다. 상담회를 통해 계약한 게임업체엔 콘진원의 제작지원사업 신청 시 가산점을 부여하고 게임 유통 관련 홍보 마케팅도 지원한다.
심우삼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