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위’ 아스널 부진 이유는?…“아주 총체적인 문제”

입력 2020-12-21 06:00
좌절한 다니 세바요스. 로이터연합뉴스

‘15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근 순위표에선 자주 낯선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어색한 건 아스널의 최근 순위다. ‘빅4’의 단골 손님이었던 아스널의 팀명은 이제 순위표 최상단에서 찾아볼 수 없다. 중위권 팀들을 지나 가장 말단까지 눈길을 돌려야, 강등권과 승점 단 4점 차이로 15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아스널의 위태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아스널의 부진이 장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단 점이고, 구단·감독·선수 구성까지 총체적으로 문제를 노출하고 있어 빠른 개선이 힘들어 보인다는 것이다.

아스널은 20일(한국시간) 영국 리버풀의 구디슨 파크에서 열린 에버턴과의 EPL 14라운드 경기에서 1대 2로 패했다. 점유율은 의미 없이 높았지만, 13개의 슈팅 중 유효슈팅이 고작 2개일 정도로 비효율적인 공격만을 진행하다가 일격을 맞았다.

이날 패배로 아스널은 최근 7경기 무승(2무 5패)을 기록하며 부진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아스날이 올 시즌 개막 후 14경기에서 얻은 승점은 14점에 불과하다. 이는 1974-1975시즌(개막 후 14경기에서 12점) 이후 46년 만에 최악일 정도로 좋지 않은 성적이다.

‘중위권’ 수준의 명단, 중위권도 안 되는 성적

가장 먼저 비판의 대상이 된 건 물론 선수들이다. 전 리버풀 감독 그레이엄 수네스는 “미켈 아르테타 감독이 아닌 어떤 감독이 오더라도 성적은 같을 것”이라며 “경기를 이기려면 좋은 선수 3~4명은 보유해야 하는데, 아스널엔 없다. 이게 상위권과 하위권의 차이”라고 부진의 원인으로 선수단의 수준을 지적했다.

실제로 올 시즌 아스널은 득점 17위(12골)에 실점 공동 8위(18실점)에 머물 정도로 공·수 전반의 성적이 좋지 않다. 개인 순위표를 봐도 득점 상위 20인의 명단에 아스널 선수의 이름은 없다. 팀의 주포 역할을 담당해야 할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과 알렉산더 라카제트가 각각 넣은 3골이 팀 내 최다골일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에버턴전에서는 몇몇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뛰지 않는 모습까지 노출하며 큰 비난을 받았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아스널은 명단 자체가 사실 끽해야 중위권 할 정도의 수준이다. 중원에서 경기를 풀어줄 선수가 없어 공격은 단순한 루트로 전개되고, 측면에선 ‘영입 실패’로도 볼 수 있는 페페에 다른 팀 선수들보다 나은 점이 없는 유망주들이 출전한다”며 “오바메양도 재계약을 체결할 때까지만 해도 환영 받았지만 막상 올 시즌 뚜껑을 여니 나이가 있어 정점을 찍고 내려온 느낌이 든다”고 분석했다.

뒤숭숭한 구단
한탄하는 아르테타 감독. 로이터연합뉴스

문제는 스쿼드의 질이 떨어진 게 아르센 벵거 감독 사임 이후 전임 우나이 에메리 감독을 거치며 쌓인 장기적인 실책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란 점이다. 벵거 감독이 22년 만에 아스널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아스널은 ‘포스트 벵거’ 체제 구축에 실패했다. 2018-2019시즌 에메리 감독을 선임하면서, 아스널은 벵거 감독이 모든 분야를 책임지는 익숙한 시스템에서 벗어나 재정과 협상, 선수 영입 등을 각각의 인사가 나눠 담당할 수 있도록 권력 구조를 변경했다. 감독 1인 체제에서 분업체제로 변경을 가한 것.

하지만 이런 3각체제는 내부 의견 불일치와 비리 등 여러 문제가 겹치며 실패로 돌아갔다. 게다가 재정 악화로 인한 구조조정까지 겪으면서 그 동안 아스널과 함께했던 수많은 인사들이 구단을 떠나는 일까지 있었다. 아스널은 다시 아르테타 감독과 에두 가스파르 기술이사에게 권력이 집중된 체제로 전환해 올 시즌을 맞았다. 하지만 몇 년간 여러 인물들이 각자의 철학을 앞세워 중구난방으로 만들어 놓은 낮은 스쿼드의 질과 반목의 감정은 한 순간에 해결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아스널이 계속해서 휘청이는 이유다.

아르테타 감독은 18일 “최근 구단은 모든 면에서 구조적 변화를 감행해야 했다”며 “나와 함께 구단 변화를 추진한 모든 이들은 시간이 필요하단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런 큰 변화가 발생한 후 팀이 안정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에버턴전 패배 이후에 현 체제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몇몇 언론에 따르면 아르테타를 보좌하고 있는 에두 이사 대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이자 최근 아약스의 성공을 이끈 판 데 사르가 새로운 기술 이사로 부임할 가능성도 제기된 상태다.

한 위원은 “아스널의 위기는 누적된 결과”라며 “구단 수뇌부들이 정신차리고 리빌딩을 했어야 했는데 디렉터, 스카우터 등이 자주 바뀌면서 선수단이 망가졌다”고 분석했다.

장악력 떨어지는 감독
실망한 아르테타 감독과 메이틀랜드-나일스. 로이터연합뉴스

그렇다고 감독 경력이 일천한 아르테타 감독이 이런 위기를 혼자 해결해 나가기도 쉽진 않아 보인다. 특히 선수단 장악력에 있어서는 계속해서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디애슬레틱에 따르면 아스널 선수들이 아르테타 감독에 불만을 가진 이유는 윌리안을 특히 편애한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윌리안은 지난달 보고 없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여행을 다녀왔지만, 이에 대한 어떤 처벌도 없이 곧바로 지난달 24일 리그 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선수에 따라 들쭉날쭉 규율이 적용되다보니 스타 선수들이 감독에 반발할 수밖에 없게 된 것.

이에 ‘태업’ 우려도 나온다. 앨런 시어러는 “아스널의 잔류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 선발 명단(의 수준)은 물론이고 선수들의 경기 태도도 그렇다”며 “아스널엔 감독을 위해 모든 걸 쏟지 않는 몇몇 선수가 있고, 그런 식으로 경기하면 득점할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스널 레전드 수비수 윌리엄 갈라스는 아예 “아르테타 감독 대신 패트릭 비에이라를 감독으로 앉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위원은 “아르테타는 선수들과의 관계도 별로인데 아예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 같다”며 “이제 정말 각성하고 겨울 이적시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상황이다. 감독만의 잘못은 아니지만 팀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도 아르테타가 감독직 수행을 계속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예측했다.

아스널은 살아날까
지난 시즌 FA컵 우승을 차지한 뒤 기뻐하는 아스널 선수들. 게티뉴시스

심각한 위기의 상황 속에 올 연말까지 일정도 험난하다. 아스널은 23일 리그컵 8강에서 맨체스터 시티(6위)를 만난 단 4일 뒤 홈에 첼시(8위)를 불러들인다. 맨시티도 첼시도 최근 성적이 신통치 않지만, 원래 강팀인 데다 아스날 만큼은 아니라 힘든 경기가 예상된다. 곧 이어 3일 뒤엔 현재 승점 단 2점 차로 16위(승점 12)에 위치해 있는 브라이턴과 물러설 수 없는 원정경기를 치러야 한다.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는 지에 따라 아르테타 감독의 입지 뿐 아니라 내년 반등 가능성도 결정될 전망이다.

가브리엘 아그본라허는 영국 ‘토크스포츠’ 패널로 참가해 “처음엔 아스널이 강등권에서 고군분투하는 상황에 웃고 넘겼지만 이제 진심으로 아스널이 강등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한 위원도 “공격도, 수비도 잘 안되고 구단 수뇌부와 감독 선수까지 총체적인 문제가 있어 바로 시정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일갈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