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스토브리그 결산 上

입력 2020-12-21 00:20 수정 2020-12-21 02:21
자유계약(FA) 시장이 열린 지 약 1달이 지났다. 2020년의 스토브리그가 사실상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내년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의 프랜차이즈 제도 도입으로 팀들의 영입 전략과 자본 규모 등에 큰 변화가 있었다. 국민일보는 각 팀이 어떤 선수를 내보내고 또 영입했는지 정리했다. 그리고 팀별로 간단한 코멘트를 첨언했다.

라이엇 게임즈 제공

담원 게이밍

담원은 큰 전력 손실이 생겼다. ‘베릴’ 조건희는 잡았지만 세계 최고의 탑을 넘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너구리’ 장하권을 지키지 못했다. 덩치가 큰 국내외 팀들과의 머니 게임에서 이길 수 없었다.

장하권을 향한 국내 팀들의 러브콜은 연봉 15억원 선에서 시작해 순식간에 20억원을 돌파했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연봉을 제시했다. 장하권은 고심 끝에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컨텐더 수준의 전력을 갖춘 펀플러스 피닉스에 입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담원은 장하권의 빈자리를 ‘칸’ 김동하로 채웠다. 김동하는 영리하고 이타적인 선수로 평가된다. 예전 소속팀이었던 T1에서는 김동하의 열정적인 자세와 라커룸 리더 역할에 높은 점수를 매기기도 했다. 그는 T1에서 함께했던 김정균 신임 감독을 보고 담원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이시’ 김동현도 영입해 최근 1군으로 콜업했다. 담원 아카데미 출신인 김동현은 올해 스프링 시즌에 어썸 스피어로 이적했다. 1년 만에 원소속팀으로 복귀한 셈이다. 미드라이너 출신인 그는 서머 시즌에 탑라이너로 자리를 옮겼다가 그대로 정착했다. 어썸 스피어는 김동현과 성향이 비슷한 농심 레드포스 ‘리치’ 이재원의 포지션 변경을 성공사례로 삼았다고 한다.

선수와 관계자들은 담원을 여전히 우승 후보로 평가한다. 하지만 올해의 담원만큼 강력할 거로 보진 않는다. 장하권은 올해 전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제이스론 상대 탑에 고속도로를 뚫었고 케넨으론 한타를 캐리했다. 김동하가 아닌 그 어떤 선수를 데려와도 장하권 수준의 캐리력을 기대하긴 어렵다.

담원에는 김동하만큼 팀 게임 이해도가 높고, 이타적이며, 정글러의 편의를 봐주는 능력이 뛰어난 선수가 한 명 더 있다. 올해 세계 최고의 미드라이너로 등극한 ‘쇼메이커’ 허수다. 두 라이너가 깔아준 판 위에서 ‘캐니언’ 김건부와 조건희가 올해보다 더 활기차게 움직여야 담원도 롤드컵 연패(連霸)를 바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DRX

DRX는 ‘도란’ 최현준, ‘쵸비’ 정지훈, ‘데프트’ 김혁규, ‘케리아’ 류민석 등 계약 만료를 앞뒀던 주전 선수 4인을 모두 놓쳤다. DRX는 이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스토브리그 동안 바쁘게 움직였지만 대어급 선수들을 결국 잡지 못했다.

DRX는 탑라이너로 ‘킹겐’ 황성훈과 ‘디스트로이’ 윤정민을 영입했다. 황성훈은 뛰어난 메카닉의 소유자로 평가된다. 솔로 랭크 소환사명 ‘사용수’로 더 유명한 윤정민은 버티는 플레이에 일가견이 있다고 한다. 윤정민은 스프링 시즌까지 스피어 게이밍(어썸 스피어)에서 활동했다. 그가 시즌 종료 후 팀을 나가면서 앞서 소개한 김동현이 탑라이너로 자리를 옮겼다.

DRX는 정글러로 ‘표식’ 홍창현을, 미드라이너로 올해 정지훈에 밀려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던 ‘솔카’ 송수형을 기용할 예정이다. 바텀 듀오 자리엔 아카데미 출신의 ‘바오’ 정현우와 ‘베카’ 손민우를 콜업했다.

DRX는 탑과 정글을 제외하면 팀 게임 경험이 많지 않다. 황성훈의 라인전 우위 점하기, 홍창현의 영리한 초반 설계가 꼭 필요하다. 김대호 감독이 2019년 그리핀 재임 당시 ‘소드’ 최성원을 폭행한 사건에 대한 징계 처분으로 5개월 출장 정지를 당한 것도 악재다. DRX는 18일 ‘쏭’ 김상수 감독을 영입하고 감독 대행으로 임명했다.

라이엇 게임즈 제공

젠지

젠지는 ‘켈린’ 김형규를 보내고 ‘라이프’ 김정민을 잡았다. 김정민은 자유계약(FA) 시장에 나갈 계획을 세웠다가 스토브리그 시작 전날 마음을 바꿔 팀과 재계약을 맺었다. 다른 포지션에선 전력 유출 없이 보강만 이뤘다. 정글러로 ‘플로리스’ 성연준을 영입하고 미드라이너로 아카데미 출신 ‘카리스’ 김홍조를 콜업했다.

김홍조는 지난해 ‘클로저’ 이주현과 함께 LCK 아카데미 미드라이너 투톱으로 꼽힌 유망주다. 처음엔 안정적인 플레이를 선호했지만, 올해 스스로 스타일 변화의 필요성을 체감해 공격력을 보강했다고 한다.

지난해 스토브리그의 승자였던 젠지는 올해 무관으로 시즌을 마쳤다. 젠지는 시즌 종료 후 ‘머리가 필요하다’는 자체 평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운영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베테랑이면서 게임 보는 눈이 뛰어난 ‘뱅’ 배준식을 서포터로 영입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다른 LCK 팀 선수들은 젠지를 2021시즌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평가한다. 워낙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 뛰어난 데다가, 같은 멤버로 2년차를 맞을 이들이 다른 팀보다 팀워크 맞추기나 이견 좁히기 측면에서도 우위에 설 거로 보고 있다.


T1

T1은 거액을 들여 FA 선수가 된 류민석을 데려왔다. 류민석은 팬보다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가 훨씬 좋은 선수다. 한 감독은 그를 “‘마타’ 조세형 이후 최고의 재능”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관계자는 “난전이 중시되는 메타에선 조건희가 제일 좋은 활약을 펼치겠지만, 다른 메타가 온다면 류민석이 더 앞서나갈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류민석과 함께할 원거리 딜러들에 대한 평가도 꽤 좋은 편이다. 한 선수는 “‘테디’ 박진성도, ‘구마유시’ 이민형도 실력이 아주 좋다. 류민석의 파트너로 어떤 선수가 나오든 굉장히 강력할 것”이라면서 “차기 시즌 바텀 듀오 중엔 T1이 가장 견제된다”고 말했다.

T1은 잘 알려진 대로 장하권 영입전에도 뛰어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비교적 빠르게 발을 뺀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대신 ‘칸나’ 김창동, ‘클로저’ 이주헌, 이민형과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팀의 에셋들을 지키기로 했다.

최근 1군으로 콜업한 아카데미 선수들에 대한 평가도 좋다. ‘제우스’ 최우제는 전장을 넓게 활용할 줄 알며, 대규모 교전에 강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탈 아카데미급”이라는 표현으로 그를 소개했다. ‘오너’ 문현준은 공격적인 성향의 정글러로 알려졌다.


아프리카 프릭스

‘스피릿’ 이다윤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드레드’ 이진혁이 아프리카의 주전 정글러로 활동하게 됐다. 남태유 신임 코치는 수년 전부터 이진혁의 성장 가능성을 지켜봐 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와 계약을 맺을 때도 이진혁을 더 좋은 선수로 성장시키고 싶다는 욕심을 어필했다고 한다.

애초 스토브리그 시작 전엔 이진혁이 FA 시장에 나올 거란 관측도 있었다. 아프리카는 주전 자리를 보장하고, 한 단계 더 성장하도록 도와주겠다고 설득해 이진혁을 잡았다. 업계 관계자와 에이전트들까지도 아프리카 사무국에 이진혁을 잔류시킨 비결을 물어봤다는 후문이다.

바텀 듀오로는 배준식과 ‘리헨즈’ 손시우를 영입했다. 올해 이름값에 못 미치는 시즌을 보낸 두 선수는 같이 명예 회복을 노린다. 특히 배준식은 아프리카보다 금전적으로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한 해외팀이 있었지만, 워낙 LCK 복귀에 대한 열망이 커 아프리카 입단을 택했다고 전해진다.

일부 팬들의 우려와 달리 배준식은 워크 에씩(노동윤리)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 사무국은 팀에서 가장 훌륭한 커리어를 쌓은 그가 솔선수범하면 다른 선수들도 큰 자극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미드라이너로 ‘케이니’ 김준철을 영입했다. ‘릭비’ 한얼 코치가 그를 원했다고 한다. 키아나와 신드라를 주로 사용한 김준철은 지난해 처음으로 팀 게임을 배웠다. 아프리카는 그의 진지하게 게임에 임하는 태도 등에 높은 점수를 매겨 영입을 결정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