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곳으로” vs “이 시국에 어딜”… ‘코로나 피신’ 엇갈리는 시선

입력 2020-12-21 07:00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연일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낮은 지역의 산 속이나 종교시설, 해변 캠핑장 등을 목적지로 삼고 있다. 한꺼번에 인파가 몰리지 않는 곳이라면 여행을 다녀와도 방역에 문제될 것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전국 곳곳에서 산발적 감염이 끊이지 않는 만큼 연말 여행족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이모(33)씨는 크리스마스 연휴에 부모님과 지리산 캠핑장에 다녀올 계획이다. 평소 여행을 즐기던 부모님이 코로나19로 인해 집에만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몸도 마음도 쇠약해지는 것 같아 준비한 깜짝 선물이다. 이씨는 “먹을 것이나 캠핑 도구도 모두 집에서 챙겨가고 직접 운전해서 가는 만큼 다른 사람과의 접촉은 전혀 없을 것”이라며 “방역에 문제가 생길 염려도 없어 조용히 다녀올 것”이라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유모씨는 지난주에 휴가를 내고 4박5일 일정으로 경기도의 한 사찰로 ‘템플스테이’(산사에서 지내는 것)를 다녀왔다. 유씨는 “자취방에서 배달 음식만 시켜 먹다가 모처럼 절에서 나오는 정갈한 건강식을 먹고 바람도 마음껏 쐬다 오니 더 건강해진 기분”이라며 흡족해 했다.

유씨는 최근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를 의심할 정도로 무기력증을 느끼곤 했는데 이런 증상도 상당히 좋아졌다고 한다. 그는 “지인들에게도 템플스테이를 적극 추천하고 있다”며 “실제로 가보면 사람도 거의 없고 명상이 일정 대부분을 이루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코로나19에 감염될 위험도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일부 시민들은 소소한 여행으로 피로감을 달래고 있지만 이런 여행족을 곱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많다. 모두가 답답함을 느끼는 코로나 시국에 저들만 여행을 가는 모습이 이기적으로 보이는 데다 여행지 주변 주민에게도 피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수도권의 한 회사에 다니는 김모(38·여)씨는 지난주에 회사 회의에 참석했다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동료 직원이 가족과 최근 바닷가로 휴가 다녀온 이야기를 자랑처럼 늘어놨기 때문이다. 김씨는 “회사 동료가 강원도 속초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거리두기 단계가 수도권보다 낮아 오히려 안전하게 다녀왔다는 식으로 얘기했다”며 “평소 마스크 열심히 쓰고 다니고 코로나19가 무섭다며 자녀들 걱정하던 사람인데 저렇게 태연하게 여행 다녀오는 것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고 전했다.

스타트업 회사에 다니는 최모(46)씨 역시 최근 동료 직원 2명이 동해안 지역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SNS(사회적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알게 됐다. 게시글에는 ‘다른 사람이 올까 싶어 조마조마했다’는 문장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최씨는 “사람 없는 곳이 대한민국에서 무인도 말고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며 “위험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안전한 곳으로 ‘피신 휴가’를 가면 거기에 있는 주민들은 불안에 떨게 될 텐데 이 사람들은 무슨 죄냐”고 반문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