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베이징] 유럽과 밀착하는 중국…걸림돌은 ‘인권’

입력 2020-12-20 17:58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홈페이지 캡처

중국과 유럽연합(EU)이 7년을 끌어온 포괄적투자협정(CAI·Comprehensive Agreement on Investment) 체결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양측 모두 연내 타결을 목표로 협상을 벌였지만 보다 의욕적인 쪽은 중국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중 무역‧통상 압박에 맞서 돌파구가 필요해서다. CAI가 관심을 끄는 건 미국 권력 교체기라는 시점과 향후 미·중 관계에 미칠 파장 때문이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20일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이번 협정이 중국과 EU의 경제 협력을 넘어 정치적 신뢰 회복, 나아가 미·중 관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기대감이 깔려 있다.

中 “협상 최종 단계”…EU 회원국은 ‘조건부 지지’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8일 정례브리핑에서 “올해 들어 중국과 EU는 투자협정과 관련해 10여차례 협상을 진행했다”며 “협상은 이미 최종 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EU 순회 의장국인 독일 정부 대변인도 같은 날 “협상에 진전이 있었고 연말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회담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EU 회원국 대부분이 CAI 체결에 대해 광범위하지만 조건부로 지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회담을 주도하는 유럽집행위원회(EC)는 중국이 유럽 기업에 시장을 더 개방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며 “EC는 또 중국에 강제노동을 중단한다는 약속을 할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조건부 지지는 강제노동에 관한 중국 측 입장 표명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EU 내 분위기는 회담 연내 타결을 기정사실화하는 중국과는 다소 온도차가 있다.

2014년 시작된 중국과 EU의 투자협정 체결 협상은 수년간 교착 상태였다. 당초 이 협상은 중국은 EU 시장에 폭넓게 접근하는데 반해 유럽 기업들은 중국 진출에 제약을 받는 불균형을 해소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2018년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고 EU가 대중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강화하면서 중국으로선 고립 탈피가 절실해졌다. 중국은 코로나19 책임론이 불거진 와중에도 ‘전랑 외교’로 불리는 공격적 외교 행태를 보여 국제사회의 반감을 사고 있다. 여기에 홍콩·신장·티베트 지역에 대한 인권 탄압 의혹도 받고 있다.

국제문제 전문가인 중국 해양대 팡중잉 교수는 SCMP에 “EU는 영국의 탈퇴로 인한 손실을 상쇄하기 위해 중국과 무역협상이 진전되기를 바라고 있다”며 “이는 중국에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EU와의 관계 개선을 내세워 미국의 전방위 압박에도 다른 출구가 있음을 과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를 비판하며 미국과 갈등을 빚어온 유럽 국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유럽에선 독일이 협상 진행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은 유럽 내 최대 대중 수출국이다. 중국에선 시진핑 국가주석이 협상을 직접 진두지휘했는데 시 주석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국제문제연구소의 유럽 전문가인 추이홍젠은 글로벌타임스 인터뷰에서 “중국과 EU의 유대는 세계 경제를 안정시키고 투자에 대한 동기를 부여한다”며 “양측간 투자협정은 향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도 좋은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과 EU가 FTA를 맺는다면 이는 경제 측면에서 세계화의 기초를 공고히하기 때문에 신냉전을 조장하는 움직임은 동기를 잃게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협상 걸림돌은 ‘인권’…“CAI, 상징적 조치일 수도”

그러나 중국과 유럽 사이에는 인권 문제라는 넘어서기 힘든 벽이 있다. 유럽의회는 최근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관료들에 대한 제재와 신장산 면화 수입 금지를 회원국에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EU는 인권을 유린하는 자들을 국적이나 거주지와 상관 없이 제재할 수 있도록 한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는데, 첫 타깃이 신장인 셈이다. 무엇보다 중국과 EU가 투자협정 체결을 위한 막바지 협상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유럽의회가 이런 결의안을 채택했다는 건 의미가 작지 않다.

중국 관변 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의회 연설에서 신장 사태를 고발한 프랑스 출신 라파엘 글뤼크스만 유럽의회 의원을 지목해 “신장의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연설에 역겨움을 느낄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유럽에서는 지난주에만 3만7000명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며 “적어도 지금 유럽의회는 중국에 대해 인권을 외칠 자격이 없다”고 반발했다.

노동 기준도 문제다. 중국은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 노동협약을 비준하지 않았고, EU는 이것이 먼저 승인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베이징에 주재하는 서방 외교관은 로이터통신에 “중국은 이번 협상에서 매우 야심적이었다”며 “그들은 에너지, 수처리, 공공시설 같은 누구에게도 개방되지 분야에 대한 중국인의 투자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중국과 EU의 투자협정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팡 교수는 “유럽은 트럼프 행정부에 비해 중국에 덜 대립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4년간 중국의 투자를 엄격하게 감시해왔다”며 “인권, 안보, 가치 관련 문제에 관해선 양측이 입장차를 좁히지 못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는 “협상 세부 사항과 이행 방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이 투자 촉진을 위한 실질적 조치인지 미래 전망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 조치인지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고 덧붙였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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