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착] 방역보다 크리스마스… 기차역 몰려든 英시민

입력 2020-12-20 17:44
19일(현지시간) 저녁, 런던 주민들이 기차역에 몰려든 모습. 이날 영국 정부는 20일 자정부터 변종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응 차원에서 런던 및 동부 잉글랜드 지역에 강력한 봉쇄조치를 예고했다. 영국 데일리 메일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영국 런던의 기차역이 큰 혼란을 빚었다. 변종 코로나19 출현에 대응한 봉쇄조치가 본격화하기 전에 다른 곳으로 탈출하려는 시민들 때문이다. 기차표는 대부분 매진됐고, 도로에는 차량 행렬이 이어졌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1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20일 자정부터 코로나19 대응을 현 3단계(Tier3)에서 4단계(Tier4)로 격상한다”고 발표했다. 이 조치는 ‘VUI2020/12/01’이라 명명된 코로나19 변종 바이러스의 급속 확산에 따른 것이다. 변종 바이러스의 전염력은 기존보다 70%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4단계 봉쇄령을 예고한 지난 19일(현지시간), 런던 도심가는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인파로 북적거렸다. 영국 데일리 메일

대응 4단계에 따르면 런던을 포함해 잉글랜드 남동부 및 동부 지역의 모든 비필수업종 가게, 체육관, 미용실 등은 문을 닫아야 한다.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경우, 등교·보육 등 목적 외에는 반드시 집에 머물러야 한다. 야외 공공장소에서도 다른 가구 구성원 1명만 만날 수 있다.

영국 데일리 메일은 “존슨 총리의 긴급발표 직후 (지역봉쇄가 시작되는) 20일 자정 전에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택시와 렌터카에 몰렸다”고 보도했다.

몰려든 피난 차량으로 인해 런던의 주요 도로가 혼잡해진 모습. 영국 데일리 메일

영국 데일리 메일

누리꾼들은 지난 밤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공유했다. 런던의 교통 요충지인 세인트판크라스역 광장에는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통제 불능의 혼란이 이어지자 역 통제실은 “이대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할 수 없다”고 경고 방송을 했다.

교통 정보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운수연합회(AA) 에드먼드 킹 대표는 “런던과 남동쪽 주변에서 거대한 인파가 밀려온다”면서 “자정 전에 크리스마스를 즐기려고 앞다퉈 도망가는 것 같다”고 했다.

런던의 온라인 열차표 예매 현황. 대부분의 표가 매진됐거나 매진을 앞두고 있다. 영국 데일리 메일

런던 시민들은 정부의 갑작스러운 봉쇄 발표에 불만을 드러냈다.

총리의 발표 직후 기차역으로 달려온 파피 우드(25)는 “정말 재앙이다. 모든 일을 엉망으로 처리한 정부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남자친구와 함께 봉쇄 예외 지역인 노스앨링톤으로 떠난다면서 “오늘 원래 크리스마스 쇼핑을 끝내려 했다. 친오빠와 남자친구의 선물을 사려고 역에 있는 모든 가게를 뒤졌다”고 했다.

런던 시민 마이클 우드(25)는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부모와의 크리스마스 약속을 취소했다. 정부는 봉쇄 조치에 앞서 더욱 정교한 지침을 마련해야 했다”고 비판했다.
지난 19일, 런던 시민들이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쇼핑을 즐기고 있다. 영국 데일리 메일

갑작스런 봉쇄 발표가 혼란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개인 저널리스트 해리엇 클러그스턴는 “봉쇄를 서두르면서 혼란은 이미 예정됐다. 몰려든 인파로 기차는 바이러스 배양소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행렬’을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해 황급히 철수하던 미군에 빗대 “사이공에서의 막차”라고도 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