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사건’ 처리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경찰은 사건을 단순폭행으로 판단,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에 따라 내사종결 처리했지만 일각에서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상 운전자 폭행 혐의를 적용해 입건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이 커지면서 경찰은 사건처리 과정이 적절했는지 다시 들여다볼 전망이다.
특가법 제5조의10은 ‘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5년에는 승객의 승·하차를 위해 일시 정차한 때도 ‘운행 중’인 것으로 보고 해당 조항을 적용하도록 조문을 구체화했다. 운전자 폭행 사건이 승·하차시 자주 발생한 점을 감안한 것이다.
20일 경찰에 따르면 이 차관은 법무부 법무실장을 지낸 후 변호사 신분이었던 지난달 자택인 서울 서초구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목적지에 도착했다며 자신을 깨우는 택시기사를 폭행했다. 당시 술에 취한 이 차관은 “왜 깨우느냐”며 택시기사의 멱살을 잡고 욕설을 뱉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차관의 폭행이 하차를 위한 일시 정차 상태에서 벌어졌지만 경찰은 특가법을 적용하지 않고 단순폭행 혐의를 적용했다. 단순폭행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 사건을 입건하지 않고 내사종결이 가능하다.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를 따지지 않는 특가법과 다른 부분이다. 택시기사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처벌불원서를 냈고, 사건은 내사종결 처리됐다.
경찰은 택시가 특가법에서 정의하는 ‘운행 상태’가 아니었다고 봤다. 폭행이 이뤄진 장소가 아파트 단지인 만큼 교통 질서에 문제를 줄 만한 곳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예를 들어 지하철역 대로 앞처럼 차량이 붐비는 곳이 아닌 인적이 드문 시골집 앞에서 하차하던 승객에게 택시기사가 폭행을 당했다면 특가법상 운행 상태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특가법상 운행 상태로 인정되려면 택시기사가 폭행을 당한 뒤에도 계속 택시 운행을 이어갈 의사가 있었고, 동시에 교통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장소에서 폭행이 이뤄진 사실이 모두 증명돼야 한다.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택시기사가 조사 과정에서 ‘운행 중이 아니라 정차 중이었다’고 직접 진술했다”며 “비슷한 하급심 판례와 피해자 진술을 함께 검토해본 결과 특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의 의견은 경찰의 주장과 다르다. 택시기사가 폭행으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으로 정상 주행이 어려워질 가능성도 경찰이 고려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어린이 교통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아파트 단지 안도 교통 질서가 지켜져야 하는 장소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며 “택시기사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 다른 손님을 태우러 가야 했을 가능성까지 살피면 충분히 ‘운행 중’인 상태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와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은 지난 19일 이 차관을 특가법 위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이들도 승객 하차를 위해 택시가 일시 정차된 경우에 해당하므로 택시기사는 운행 중인 상태에서 폭행을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기본적으로 사건처리에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법리검토나 판례적용에 미흡한 점은 없었는지 살펴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최지웅 정현수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