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구의역 김군·김용균 동료들 “변창흠 사퇴” 청와대로 향한다

입력 2020-12-19 11:13 수정 2020-12-19 16:12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의 피해자 김군과 청년 비정규직 근로자 고(故) 김용균씨의 동료들이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구의역 김군이 근무했던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PSD1지회는 오는 20일 청와대 앞에서 변 후보자의 자진 사퇴와 청와대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보수야당은 물론이고 노동계로부터 공개적인 사퇴 요구가 나오면서 여권의 정치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

변 후보자는 2016년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시절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에 대해 “(피해자 김군) 걔만 조금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막말 논란이 제기된 상태다.


변 후보자는 논란이 커지자 18일 오후 늦게 입장문을 내고 “4년 전 SH 사장 재직 시 제 발언으로 인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게 되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며 “특히 저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책임 있는 설명 대신, 사과문이 단 세 문장으로 구성돼 ‘3줄 사과’라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PSD1지회 소속 임선재 지회장은 19일 오전 국민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여러 조합원들이 화가 많이 난 상태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화가 난다고 한다. 사자 명예훼손으로 변 후보자를 고소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며 “변 후보자의 발언은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한 수준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 매우 반노동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변 후보자의 자진 사퇴는 물론이고 청와대에 변 후보자의 임명 철회도 공개적으로 요구키로 했다. 임 지회장은 “아주 짧은 한마디라도, 본인의 말에는 본인의 철학이 담긴다. 변 후보자의 발언을 보면 변 후보자는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김군에게 전가했다”며 “그렇기 때문에 서울교통공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서는 더더욱 인정할 수 없다. 자격이 없기 때문에 청와대에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 후보자의 ‘3줄 사과’에 대해서는 “매우 형식적인 입장 표명에 불구하다.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사과문을 보면 자신은 잘못한 게 없는데, 논란이 된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016년 사고 당시 구의역 추모 행동을 주최한 단체 ‘청년전태일’과 고(故) 김용균씨의 동료들이 청와대 앞 사퇴 촉구 기자회견에 동참할 예정이다. 이 외의 노동 단체들도 동참 논의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고(故) 김용균씨는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다.

지회는 입장문을 통해 “이번 변 후보자의 임명을 통해 문재인정부의 반노동 민낯을 똑똑이 보았다”며 “사고를 당사자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변 후보자의 모습은 제2의 김군을 막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즉각 제정하자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문재인정부와 너무도 닮아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런 인식을 가진 장관을 임명하는 모습이 스스로 반노동 정권임을 실토하고 있는 행위임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국민일보가 지난 1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SH 건설안전산업본부 회의록을 보면, 변 후보자는 구의역 사고를 언급하면서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 때문에 사람이 죽은 것이고 이게 시정 전체를 흔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치 시장이 사람을 죽인 수준으로 공격을 받는 중이다. 사장이 있었으면 두세 번 잘렸을 정도”라고 했다. 당시 구의역 사고 책임론에 휩싸였던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두둔하며 말한 것으로 보인다. 변 후보자는 이어 “서울시 산하 메트로로부터 위탁받은 업체 직원이 실수로 죽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라며 “걔(피해자 김군)만 조금 신경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현장이 많다. 조금의 실수가 없게 해 달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임대주택 입주민에 대해 “못 사는 사람들은 밥을 집에서 해 먹지 미쳤다고 사 먹느냐”고 발언한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행복주택과 관련해서는 “입주민들이 들어온 후 으쌰으쌰 해서 우리한테 추가로 (주차장을) 그려 달라 하면 참 난감해진다”고 했고, 기초단체의 건축 요구에 대해서는 “환경단체에 슬쩍 줘서 떠들게 하고. 이렇게 좀”이라고 언급했다. 환경단체를 이용해 반대 여론을 조성하라는 취지다. 2016년 발생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에 대해서는 “업체 직원이 실수로 죽은 것”이라며 개인 책임으로 몰았다.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정의당과 국민의당 등 대부분의 야당에서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오는 23일 열릴 예정이다. 변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보다 자세한 설명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다음은 집회측 입장문 전문.
구의역 김 군의 죽음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니다!

구의역 김 군의 죽음을 모욕한 변창흠 장관 내정자는 즉각 자진 사퇴하고 청와대는 장관 임명을 철회하라!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내정자의 후안무치한 발언에 치가 떨린다.

구의역에서 발생한 사고로 김 군이 사망하던 날 김 군의 어머니께선 “책임감 있게 아들을 키운 게 후회된다” “지시를 잘 따르는 사람은 개죽음만 당한다”라며 울부짖으셨다.

멀쩡히 일하던 아들의 억울한 죽음이 변창흠 내정자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란 말인가?

김 군의 사망을 겪은 동료들은 지금도 트라우마와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미 2013년과 2015년 똑같은 사고로 두 명의 동료를 잃었음에도 세 번째 죽음을 막지 못한 죄책감 말이다.

3년 사이 세 명의 노동자가 죽어야 했던 현실이 변창흠 내정자에겐 “걔만 조금 신경 썼으면 되었을 일”이란 말인가?

2016년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김 군의 사고는 구조적 문제였다.

비용 절감 미명하에 2인 1조도 지킬 수 없었던 과도한 업무량, 이미 두건의 앞선 사망 사고가 있었음에도 아무도 책임 지거나 처벌받지 않았던 구조, 이런 상황을 가능하게 한 위험의 외주화를 추진한 서울시와 서울메트로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었다.

그럼에도 변창흠 내정자는 “업체 직원이 실수로 죽은 것”,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에 죽었는데, 이게 시정 전체를 흔든다”라며 김 군을 모욕하고, 김 군의 죽음을 김 군의 잘못인 양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이후에도 “경각심을 가지라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 발언하는 등 본인의 생각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주장했다고 한다.

이런 인물이 서울교통공사의 감독 기관인 국토교통부의 장관이 되는 것을 김 군의 동료들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변창흠 내정자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책임지고 장관직을 자진 사퇴하기 바란다.

문재인 정부에도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이번 변창흠 내정자의 임명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반노동 민낯을 똑똑히 보았다.

산재 사망은 구조적 원인에 의해 일어난다. 그럼에도 김 군의 죽음을“걔만 조금 신경 썼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 이었다”라며 개인의 탓으로, 사고가 난 당사자의 탓으로 돌리는 변창흠 후보자의 모습은 제2의 김 군을 막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즉각 제정하자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문재인 정부와 너무도 닮아있다.

하루에도 일곱 명의 노동자가 퇴근하지 못하고 산재로 사망하고 있는 여전한 현실에서 김 군의 죽음을 “업체 직원이 실수로 죽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란 인식을 가진 장관을 임명하는 모습이 스스로 반노동 정권임을 실토하고 있는 행위임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김 군의 죽음으로 인한 유가족과 동료들의 고통을 눈곱만큼이라도 헤아린다면 문재인 정부는 막말 당사자인 변창흠 내정자의 임명을 철회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에 힘을 쏟기 바란다.

구의역 김 군의 명예와 노동자들의 목숨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지 않도록 김 군의 동료들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내정자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며 싸울 것이다.

구의역 김 군의 죽음을 모욕한 변창흠 내정자는 즉각 장관직을 자진 사퇴하라!
청와대는 고인을 모욕하는 반노동적 발언을 한 변창흠 장관 내정자의 임명을 철회하라!

2020. 12. 18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PSD1지회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