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끼 안돼” 하던 아빠, 유기견 건우에 녹았습니다 [인터뷰]

입력 2020-12-19 10:05 수정 2020-12-19 10:05
건우 작은누나 최세화씨와 반려견 건우. 건우는 6개월간의 임시보호를 거쳐 최씨 집안의 막내가 되었다.

학대받거나 버려진 동물도 다시 인간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안내견에게 퍼피워커가 있듯, 유기동물 곁에는 임시보호자(임보자)가 있다. 보호소의 안락사 순번에서 빠져 나와 몇 달간 입양을 준비할 수 있으니, 유기동물에게 임보는 입양 못지않게 소중한 기회다.

구독자 7만 명인 유튜브 채널 ‘거누파파네’는 지난 2년간의 임보 이야기를 전한다. 등장인물은 은퇴한 아빠와 엄마, 그리고 두 딸. 그간 유기견 5마리를 임보하고, 4번째 견공인 ‘건우’를 입양해 유튜브 스타로 키워내면서 누적 조회 수 1700만여 회를 기록했다. 보호하던 유기견을 입양 보내는 그 날, 두 자매가 눈물을 펑펑 쏟는 영상에는 “시청하면서 엄청 울었다” “저도 임시보호에 동참하겠다”는 댓글이 1000여 개 달렸다.

국민일보는 지난 16일 경기도 모처에서 ‘거누파파네’의 기획자이자 막내딸인 최세화(26)씨와 반려견 건우를 만났다. 최씨는 “임보는 아이들이 꽃길을 걷도록 도와주는 과정”이며 “이별의 슬픔만큼 큰 행복이 몰려온다”고 지난 2년의 소회를 밝혔다.

세화씨가 임시보호했던 다섯마리 강아지들. (왼쪽 위부터)한쪽 다리가 없었던 '시리', 사람의 손길을 유난히 무서워 했던 '스콘', 애교쟁이 푸들 '해리', 이제는 집안의 터줏대감이 된 '건우', 캐나다로 입양을 간 '비타'. 모두 행복한 인생 제2막을 살고 있다.

"유기견을 꽃길로 데려다주는 일이에요"

- 지금까지 5마리(시리·스콘·해리·건우·비타)의 유기견을 임시보호했는데 계기가 궁금하다

“2018년 4월쯤 다리 한쪽이 없는 슈나우저, 시리를 만났다. 시리는 2달 뒤 캐나다로 입양이 확정됐는데 비행기 편을 기다리는 사이에 임보할 집이 필요했다. 시리는 다리 한쪽이 없다 보니 보호소에 머물면 다른 견공들에게 물리고 괴롭힘을 당한다더라. 친언니가 활동하는 대학 커뮤니티에서 그 딱한 사연을 봤고, 마침 우리 자매는 개를 기르고 싶었다. 개 기르는 걸 몹시 반대하던 아버지도 때마침 지방 근무 중이었다. 2달이면 부담 없이 돌볼 수 있겠다 싶어서 임보에 도전한 것이 시작이다.”

"안녕하세요!" 눈밭 위로 힘차게 등장한 세화씨와 건우.

- 본인이 생각하는 유기견 임시보호란

“고생하다가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경우를 ‘꽃길 걷는다’고 하지 않나. 임보는 유기견들을 ‘꽃길의 출발선에 데려다주는 일’이다. 유기견을 가정에서 돌봄과 동시에 기본적인 사회화 등 입양 갈 준비를 돕는 일이다. 저도 처음엔 임보를 아예 몰랐다. 평소 개를 기르고 싶었지만 ‘입양하거나, 안 키우거나’ 두 가지 선택지만 있는 줄 알았다. 무조건 평생 함께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임보’라는 방식도 있더라. 동물 보호소에 문의하면 임보할 견공을 소개받을 수 있다. 5마리 중에 건우(넷째), 비타(다섯째)처럼 제가 지목하는 때도 있지만, 그 외 아이들은 당장 도움이 급하다고 보호소에서 알려주셨다.”

유튜브 '거누파파네' 채널 캡처.

-임보는 ‘이별이 정해진 만남’이라고들 하는데

“임보는 슬프면서 동시에 행복한 일이다. 제일 힘든 부분은 이 아이와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슬픔을 감수해야 한다. 저도 처음 임시보호하던 아이를 입양 보낼 때 펑펑 울고 난리를 쳤다. 하지만 거듭 임보와 이별을 반복하다 보면, 이별의 고통을 극복하는 시점이 온다. 얘들 진짜 불쌍한 운명이었는데 좋은 가족을 만났구나, 그 견생역전의 감동이 크게 다가온다.”

- 돌보기 힘들었던 순간은

“사회화가 안 된 동물을 직접 돌봐야 할 때도 있다. 둘째 스콘이는 사람을 너무 무서워했다. 학대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였는데, 언니가 데려왔을 때 품 안에서 똥과 오줌을 지릴 정도였다. 첫 임보하던 아이와 기억이 너무 좋았던 탓에 우리 자매가 너무 성급하게 둘째를 데려온 거다. 동물병원을 가려면 울타리 쳐서 케이지로 몰아넣고, 스콘이는 무서워서 똥을 다 흘리고 그랬다. 우리는 도와주자는 건데 애를 더 공포에 몰아넣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다행히 스콘이는 너무 좋은 주인을 만나서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스콘이는 딱한 경우였고, 대체로 유기견은 사회성이 좋다. 개들이 많은 곳에서 지낸 경험으로 누구든 잘 어울린다. 애견숍에서 데려온 견공들은 다른 개를 경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유기견의 경우에는 애견 놀이터에서도 잘 놀고 다른 개들과도 잘 지낸다. 기왕 입양하실 거면 다른 생명에게 꽃길도 열어주는 입양을 권하고 싶다.”

- 어려운 순간에 도움을 요청할 곳은 있었나

“임시보호를 하면서 세상의 따뜻함도 느꼈다. 사정이 딱하면 수의사가 무료로 검진해주거나 간식을 잔뜩 챙겨주신다. 지역주민 온라인 커뮤니티에 도움을 호소하면 남는 밥그릇, 안약, 배변 패드 등을 한가득 보내주시더라. 혼자 돌보면 힘들었겠지만 곁에서 언니, 아빠, 엄마가 힘을 줬다. 와, 세상 참 따뜻하더라.”

- 임보하는 이야기를 유튜브에 담은 이유는

“단순한 기록용이었다. 그런데 임보 영상에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이더라. 유튜브 영상 ‘유기견 임시보호 네 차례, 그동안의 이야기’의 경우 조회 수가 87만 회 터졌다. 지금도 유튜브, 블로그, 인스타그램을 타고 와서 ‘임시보호를 하고 싶다. 방법을 알려달라’는 문의가 많다. 이분들에겐 하나하나 다 댓글을 달아드린다. 임시보호를 하고 싶어도 모르는 분들이 채널에서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

'시고르자브종(시골잡종을 변형한 말로, 믹스견을 부르는 애칭)' 유튜브스타 건우. 이름은 보호소에서 지어줬다. 까만 주둥이라 '까주', '짜장이' 등 이름 후보가 많았지만 결국 '건우'가 익숙할 것 같아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고.

"개는 안된다"던 아빠…굳었던 마음 녹았다

- 임시보호한 5마리 중 넷째, 건우를 입양한 이유는

“다른 애들은 길어도 3개월 안에 입양을 갔는데, 건우는 6개월 넘게 갈 곳을 못 찾았다. 원래 약속된 임보 기간이 지나면 개를 보호소로 돌려보낼 수 있다. 건우도 원칙대로라면 2~3개월 뒤에 보호소로 가야 했다. 그런데 함께한 시간이 많아지면서 정이 쌓였다. 정이란 것이 한번 커지면 돌려보낼 수 없더라. 아마 건우가 아니라 다른 강아지였어도 (6개월을 함께 보내면) 우리 가족이 됐을 거다.”

"현기증 나요 빨리 주세요" 건우는 귤을 좋아한다. 보통 개들은 후각이 에민해서 신맛나는 과일을 싫어하는 걸 감안하면 특이한 케이스.

-“얘 치우라”던 아빠가 “내 막내아들”이라고 마음을 돌린 사연은

“2018년 말, 건우를 임시보호하던 때 갑자기 아빠가 퇴직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개를 싫어하던 아빠와 건우가 만난 거다. 아빠 몰래 건우를 임보하다가 평생 가족을 찾아주려던 우리의 계획에 문제가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아빠는 ‘이 시끼 내보내라’고 화를 냈고, 우리 자매는건우에게 가족이 잘 안 찾아진다’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건우의 산책에 아빠가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아빠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열린 것 같다. 건우를 입양하고 두 달쯤 지났을까, 아빠가 잔뜩 술에 취한 채로 들어와서는 ‘그냥 이 시끼 키우자, 내가 똥 치우고 다한다’고 하시더라. 그저 술주정인 줄 알았는데 이후 진짜로 건우를 키우자고 하셔서 바로 입양 신청을 했다.

5번째 임보견 비타와 함께한 '거누파파네' 가족사진. 본인 제공.

- 건우를 막내아들로 입양하면서, 가족 간에 더 끈끈해진 것 같다

“건우 덕분에 가족 간에 대화가 정말 많아졌다. 특히 아버지가 퇴직하고 나서 건우의 역할이 크다. 막내아들 하나 생겼다고 해야 하나? 매일 산책을 함께해야 하고, 밥도 챙겨줘야 하니까. 가족 간 대화와 소통도 더 많아졌다. 애견운동장 같은 데 놀러 가면서 추억도 쌓고, 데리고 여행도 종종 간다. 건우가 없었다면 이렇게 대화를 많이 했을까 싶다.”

최씨의 신간 '퇴근은 내가 할게 출근은 누가 할래'는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동생과 직장인 6년차인 언니의 180도 다른 삶의 모습을 교환일기 형식으로 풀어낸 에세이집이다. 사진 본인 제공.


최세화씨는 1인 유튜브 크리에이터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책 '퇴근은 내가 할게 출근은 누가 할래' 를 펴내기도 했다. 조금은 남다른 가족 유튜버의 일상에 대해 물었다.

- 아빠와 건우를 소재로 유튜브를 만든 이유는

“임시보호 콘텐츠로 채널이 유명세를 탔다. 처음 임보하던 시리와 이별하는 영상을 계기로 일상의 모든 걸 기록하게 됐다. 요즘은 임보를 잠시 쉬고 있는데, 건우와 아버지의 케미(궁합)가 채널에 가장 큰 부분이다. 유튜브가 처음엔 막연한 추억기록용 채널이었는데, 채널을 하다보니 내가 남을 잘 띄워주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뒤로는 아버지와 건우의 교감을 담는 보조자의 역할에 집중했다.”

- 취업준비생 시절, 유튜버를 도전하던 심정은

“그때가 2018년 12월, 대학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때다. 내 인생에 취업은 2, 3순위였다. 뭐가 되든 창업해보고, 진로를 탐색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빠가 갑자기 퇴직을 하셨고, 가족이 무너지는구나 싶더라. 결국 작은 여행사에 입사했다. 그 당시 다이어리를 보면 나는 되게 우울했고 조급했다. 미련이 남아서 퇴근 후 쉬지 않고 아빠와 건우의 영상을 만들었다. 친구고 연애고 뒷전이고 오로지 영상을 만들었다. 그런데 용기를 준 것이 아빠였다. 나보고 '회사 그만 다녀라' '6개월 다녔으면 됐다, 너는 회사 밖에서도 자리잡을 자질이 있다'며 격려하셨다. 딸이 백수 아빠를 먹여 살리려나, 각을 보신 것도 같고. (웃음) 그러다 제 부수입이 회사월급을 뛰어넘는 순간이 왔고 퇴사를 결정했다. 지금도 아빠는 '너 내가 말해줘서 잘 된거다'라며 생색내신다.”

- 혼자서 촬영, 편집, 기획은 쉽지 않은 일인데

“가족유튜브의 강점이랄까. 촬영시간이나 섭외가 자유롭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제작하다보니, 다음주 혹은 다다음주까지 방송분은 없다. 녹화본이 없다보니 아이디어가 고갈나면 가족들에게 재촉한다. 좀 힘에 부칠 때도 있다. 영상 편집은 하루 종일 걸리는 노가다 작업이다. 그렇지만 영상에 등장하는 아빠나 건우를 제일 잘 아는 건 저이고, 누군가 대신 편집할 수는 없다. 유튜브를 운영하면서 아빠의 숨은 재치를 발견했다. 아빠가 스스로 기획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용돈을 걸거나 임무를 주면 열정적으로 변한다. 금연·건우 산책하기 같은 미션을 부여하는 식이다. 댓글 중에는 ‘처음엔 건우 보러 왔다가 요즘은 건우 아빠 보러 온다’는 내용이 많더라.”

- 구독자 7만명의 채널인데 수익은 충분한지

“생계를 유지할 만큼은 벌고 있다. 하지만 프리랜서의 삶은 엄청 불규칙하다. 주 수익원은 광고 영상을 만드는 것이다. 광고 문의가 한달에 한 두 개씩 꾸준히 들어오면 좋겠지만, 아예 없을 때도 있고 한 달에 3, 4개 쏟아질 때도 있다. 과부하 걸린다는 걸 알지만, 없다가 들어오면 사람 마음이 다 받게 되더라. 그리고 채널에 광고영상만 줄줄이 올라오게 된다. 그 간격을 조절하는 게 유튜버의 역량이더라. 그런데 제가 아직 서툴러서 그 조절을 잘 못할 때가 있다. 광고가 몰리면 새벽 작업도 해야 하고, 불규칙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저는 이런 불규칙함이 즐겁다. 요동치는 계좌는 즐겁지 않지만.”

-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분들에게 조언하자면

“고민하지 말고 일단 해보시면 좋겠다. 고민하다가 고민에 그치는 분들이 많더라. 일단은 해보라. 일단 동영상 한 두 개 올려보면 적성에 맞는지 알 수 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송다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