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2월 1일이면 거리에선 자선냄비의 시작을 알리는 케틀 메이트(자선냄비 자원봉사)의 사랑의 종소리가 ‘딸랑딸랑’울려 퍼졌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1928년 12월 5일 명동에서 거리 모금을 시작한 이래 92년간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경제 불황으로 거리 모금액이 줄긴 했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자선냄비를 찾는 온정의 발길이 크게 줄었다. 12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거리 모금은 25%, 기업 모금은 30% 감소했다. 코로나 단계 격상으로 모금 처소를 358개에서 250개로 축소한 것도 감소 요인이다. 반면 디지털 및 온라인(QR, 후불교통카드, ARS, 후원계좌 등)으로 모인 기부금은 전년대비 40% 증가해 자선냄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추운 겨울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나눔의 상징으로 자리한 구세군 자선냄비, 코로나19에도 모금 활동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고, 모금액은 어떻게 운영되며 누구에게 사용되는지 등에 관한 질문을 곽창희 사무총장(구세군 자선냄비 본부)과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곽창희 총장과 나눈 일문일답.
Q. 코로나로 인해 확진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고, 거리 모금활동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시선들도 있다.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은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십시일반 나눔 운동’이다. 어린아이부터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까지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구세군에 주고 있다. 그 마음을 잘 전달해 드리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다. 매년 거리에서 시민들의 정성을 대면으로 모금을 진행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단계별 방역지침에 따라 위험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을 세웠고, 코로나 2.5단계 격상으로 모금 처소를 358개에서 250개로 축소했다. 앞으로도 단계 지침에 따라 모금 처소의 수와 기간을 조정하는 등 유연하게 대처할 계획이다.
Q. 구세군 자선냄비가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어느 부분이 가장 크게 변화됐나.
-매년 12월이면 시종식을 통해 자선냄비 거리모금 시작을 알려왔다. 시종식이란 단어의 의미는 자선냄비의 상징이기도 한 ‘종’을 치기 시작한다는 의미다. 자선냄비의 거리모금도 이때부터 시작해 12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사상 처음으로 유튜브 생중계로 온라인으로 시종식을 진행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외부 초청 없이 진행됐다. 전국에서 온라인 시종식으로 모금 현장과 각 가정에서 참여했다. 매년 거리에서 시종식을 진행해왔는데 온라인 시종식을 한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Q. 자선냄비 거리모금과 달리 디지털 및 온라인 기부는 어떤가.
-자선냄비 모금은 거리모금, 기업 모금, 나눔 교육(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 교회 모금, 온라인 모금(네이버해피빈, 한화 불꽃 등), 은행 모금, 고속도로 휴게소 모금, ARS 모금, 물품 후원 방식 등으로 진행하고 있다. 거리모금은 코로나19 방역 및 안내를 통해 철저하게 방역수칙을 지키며 모금을 진행 중이다.
디지털 및 온라인(QR, 후불교통카드, ARS, 후원계좌 등)으로 모인 기부금은 전년대비 40%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언택트 문화가 새로운 사회 분위기로 형성돼 디지털 모금(후불교통카드, QR 제로 페이, 네이버 페이 등) 온라인 모금 등의 비접촉 모금 채널을 통해 국민들이 쉽고 안전하게 자선냄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상승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분석된다.
Q. 자선냄비와 관련된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나.
-강원도에서 쑥떡 장사를 하시는 89살 어르신 내년에 죽지 않고 살면 쑥떡을 팔아가지고 또 오겠다는 편지와 함께 10만원을 기부했다. 편지에는 “고통받는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건강과 희망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선냄비가 있어 너무 좋습니다’라는 글로 사랑의 마음을 함께 보내주셨다.
돌도 안 된 사랑하는 아이를 하늘나라에 보내고 돌 반지를 넣어주신 분, 3년 동안 폐지를 모아 판매한 금액을 자선냄비에 넣어준 중곡동 할머니 등 수많은 사연이 자선냄비에 모여들고 있다. 하나하나 놓칠 수 없는 귀한 사랑이고 기억에 남는 분들이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한 사랑의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따뜻해졌다.
Q. 유명인들의 기부 사례도 있나.
-YG엔터테인먼트, 배우 송승헌, 온주완, 유인나 등 연예인들 및 기획사의 기부 사례도 있고, 김연아, 걸스데이, 이영애, 옹성우 등은 애장품으로 참여해줬다. 또한 이낙연 전 국무총리(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배우 소유진, 박솔미, 개그우먼 심진화 김원효 등이 스페셜 자선냄비 봉사 및 기부로 참여했다.
Q. 자선냄비 모금은 타 단체와의 모금과 어떻게 다른가.
-구세군 자선냄비는 연말이면 거리에서 모금 활동을 실시하는 겨울의 상징 같은 존재다. 12월 한 달 동안 사랑의 종소리와 함께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다. 익명으로 기부하는 시민들의 따듯한 진심이 담긴 모금 활동이다. 1928년부터 시작된 자선냄비 모금은 하나의 국민운동으로 거듭나고 있다. 앞으로도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도움을 기다리는 이웃들을 위해 오래도록 뜨겁게 끓어오르며 시민들과 함께 돕고 나누는 단체로 나아갈 것이다.
Q. 자선냄비 모금액의 배분은 어떻게 이뤄지나.
-구세군 자선냄비는 우리 사회의 생존과 건강한 삶을 이루는데 어려움을 겪는 가장 취약한 계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자선냄비의 배분사업은 ‘아동‧청소년’ ‘노인‧장애인’ ‘여성‧다문화’ ‘긴급구호‧위기가정’ ‘사회적 소수자’ ‘지역사회 역량강화’ ‘북한 및 해외’라는 7가지 나눔 영역을 통해 “기초생계, 역량 강화, 환경개선, 건강증진, 사회안전”이라는 5가지 나눔 원칙과 방향성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실직노숙인, 미혼모, HIV/AIDS 감염인과 같이 공적 지원 사각지대로 여겨지는 영역과 갑작스러운 재해를 만난 분들을 위한 긴급구호, 위기가정,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를 위한 의료지원 등에 나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Q. 자선냄비 모금액은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나.
-자선냄비는 모금 전 행정안전부에 모금 계획서를 낸다. 12월 모금 뒤엔 결과 보고서와 사용계획 승인 요청서 등을 제출한다. 모든 집행을 마친 뒤에는 외부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고, 그 감사 보고를 참고해 행정안전부에 결산 보고를 함으로써 투명한 모금과 나눔을 진행한다. 이 외에도 구세군에서는 자체적으로 1년에 한 번씩 회계 감사를 시행하고 3년에 한 번, 국제 구세군을 통한 국제 회계감사를 시행해 모금 및 배분을 투명하게 관리한다.
또한 투명한 기부금 내역을 공개하고 기부자들이 쉽고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공익법인 결산 서류(재대한구세군유지재단법인,사회복지법인구세군복지재단) 공시 의무에 따라 매년 국세청에 결산 서류 연간 기부금 모집 및 지출 명세서 등을 제출하여 공개하고, 감사보고서, 예·결산 내역 및 연차보고서를 구세군 자선냄비 본부 홈페이지에 투명하게 공개해 오고 있다. 더욱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구세군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Q. 나눔 운동 확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구세군은 ‘이웃 사랑’이라는 창립 정신으로 지난 112년간 한국에서 사회사업활동을 해오며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웃을 찾아가 그들을 사랑으로 먹이고, 입히고, 돌보는 일을 사명으로 삼아왔다. 상하고, 찢기고, 고통받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이 땅에 희망을 전파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Q. 구세군 나눔의 가치는 무엇인가.
-구세군은 어려운 이들을 도울 때 일회성으로 끝나는 지원이 아닌 재활과 독립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을 설계해 돕고 있다.
구세군이 쓰는 구호 중에 “Get up, stand up, stay up!”이라는 말이 있다. 쓰러진 사람에게 다가가 도움을 줘서 일어설 수 있게 하고(Get up), 이 사람이 다시 쓰러지지 않고 스스로 서 있을 수가 있는 힘을 제공하고(stand up), 향후 혼자의 힘으로 넘어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육신적(Soup), 물질적(Soap), 정신적 그리고 영적(Salvation)인 힘을 제공해 사회의 생산적인 일원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stay up)까지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Q. 올해 모금 목표액은 어떻게 되나.
-올해는 전년도와 같이 모금 목표액을 따로 정하지 않았다. 자선냄비 모금은 100원짜리, 1000원짜리 한 장이라도 소중히 여기겠다는 구세군의 다짐을 표현한 것이다. 이런 구세군의 초심에 온 국민이 응답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Q. 모금 활동이 13일 밖에 남지 않았다. 시민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대한민국 나눔 운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구세군의 자선냄비 모금운동은 1928년 시작돼 오늘까지 우리 이웃들의 애환과 함께 발전해 왔다. 92년 동안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하며 사랑의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고사리 같은 어린아이 손에서부터, 이름 없이 고액의 기부금을 보내주신 기부자, 선한 기업의 진정한 나눔까지 온 국민이 참여해 왔다.
자선냄비는 이웃을 돌보며 더불어 살기 위한 사랑 실천 운동이다. 적은 것도 이웃과 함께 나누기 위해 국민과 함께 지키고 가꾸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코로나로 인해 더욱 어려운 시기에도 지난 1일 자선냄비가 시작돼 거리에서 사랑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31일까지 거리에서 들려지는 사랑의 종소리가 시민들에게 따뜻한 감동의 울림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코로나19로 사회복지 사각지대에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이 더욱 많아졌다. 소외된 이웃을 위한 따뜻한 사랑을 조금씩 나눠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