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장씩 써서 만든 ‘칠곡할매’ 폰트…“눈물이 났어” [인터뷰]

입력 2020-12-19 09:05
'칠곡 할매' 이원순 할머니. 오른쪽은 16일 이 할머니와 화상 인터뷰 도중 캡처한 사진. 칠곡군 교육문화회관 제공, 박은주 기자

“아이고 영어 글씨 쓸 때는 참으로 땀이 철철 흐르더라.”

곱게 빗은 머리, 새빨간 목티. 소녀처럼 해사하게 웃던 할머니는 ‘꼬부랑 글씨’ 이야기가 나오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난해 초 개봉한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주인공 중 한명인 이원순(83) 할머니다. 이 할머니는 최근 경북 칠곡군이 주관한 서체 제작 작업에 참여했다. 삐뚤빼뚤한 글씨는 최대한 다듬고, 알파벳은 쓰는 대신 그리면서 꼬박 4개월을 매달렸다.

이름 석자도 쓸 줄 몰랐지만 몇 년 사이에 시집도 냈고, 영화에도 출연했고, 서체까지 만들었다. 글자 몰라 겪었던 설움은 “세월을 드럽게 타고 나서 그래”라는 ‘쿨’한 말로 지워버렸다. 대신 눈가 주름이 깊게 접힐 만큼 웃으며 “참 좋다”고 말한다. 지난 16일 화상통화로 만난 이 할머니는 그 “참 좋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연필 쥘 줄도 몰랐는데…이젠 혼자 웃는다”

이 할머니는 5~6년 전쯤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칠곡군 성인문해교육 사업으로 마을회관에 배움학교가 생기면서다. “(첫날에) 연필을 쥘 줄도 몰라서 ‘이렇게 쥐어야 하나’ 하니까 선생이 ‘예’ 이카대. 따라 쓰라고 해서 보고 쓰면서 배웠지.” 말하는 건 쉬운데, 쓰는 건 어색했다. 글자를 익히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이 할머니는 “2시간 배워놓은 거 문지방 넘어가면 잊어버리고. 이튿날 가면 ‘어제 뭐라카던데 뭣이었지’ 했다”면서 “그러니 선생이 얼매나 애 먹었겠노”라고 말했다.

이 할머니의 공책. 칠곡군 교육문화회관 제공

경북 김천에서 나고 자란 이 할머니는 결혼 후 지금 거주하는 칠곡 약목면에 자리를 잡았다. 쉬운 나날은 아니었다. 맏딸과 삼형제, 네 자녀의 학업을 위해 쉴 새 없이 일했다. 다행히 네명 모두 주변에서 칭찬할 정도로 바르게 컸지만 정작 자신의 배움은 생각도 못 했다. 몸을 살피지 못한 채 일한 탓에 어깨, 무릎 등 성한 곳도 없었다.

그러니 처음 ‘이원순’ 이름 석자를 보지 않고 썼을 때는 날아갈 듯 기뻤다. 공부를 마치고 집에 오면 TV 앞에 앉아 자막을 유심히 봤다. 이 할머니는 “어쩔 땐 테레비에 배운 게 한글자씩 나올 때가 있어. 그러면 ‘아, 저거는 저리 가면 뭣이더라’ 하면서 내 혼자 웃는다”며 “눈치껏 해야 한 글자라도 더 배우지”라고 했다.

여름 내내 수천장씩…“영어 참 얄궂더라”

이 할머니가 배움학교에서 쓴 시는 시집과 영화를 통해 소개됐다. 시집에는 칠곡군 내 성인문해교육을 듣는 다른 마을 할머니들의 작품이 함께 수록됐고, 영화에는 약목면 배움학교 할머니들이 다 같이 출연해 각자의 일상과 시를 공개했다. 당시 영화에는 이 할머니의 시 중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어무이’라는 시가 나왔다. 이 할머니는 “그거(그 시)는 내 머리에서 생각이 나대”라며 “선생한테 ‘그거를 써주면 내가 한 글자 한 글자 배워가면서 내 글씨로 만들란다’ 하고 읽어보면서 썼어”라고 말했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 가방. 칠곡군 교육문화회관 제공

서체 작업은 올해 6월부터 4개월 동안 진행됐다. 이 할머니 외에도 김영분(74), 권안자(76), 이종희(78), 추유을(86) 할머니까지 총 5명이 참여했다. 할머니들은 여름 내내 각자 2000여장씩 쓰며 서체 연습에 몰두했다고 한다. 펜을 7개나 쓴 할머니도 있었다. 디지털 폰트는 글씨체도 중요하지만, 정해진 규격에 맞춰야 해서 여러 고충이 있었다. 그래도 할머니들은 자신의 글씨체가 영구 보존된다는 소식에 최선을 다했다.

글씨체 연습을 하는 이 할머니. 칠곡군 교육문화회관 제공

칠곡군 교육문화회관 제공

“글자 만들 때 여러 장 많이 썼지. 안 되는 거는 ‘이거 얄궂다’ 하면서, 선생이 가져갈라고 하면은 내가 뺏어서 다시 쓰고 그랬어.” 마음처럼 써지지 않는 글자가 야속하게 느껴지고, 교사가 ‘이 정도면 괜찮다’고 해도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연습했다는 뜻이다. 영어와 특수문자 때문에 어려움도 많았다. “한국 공부도 모르는데 영어를 쓰라고 하면 손이 돌아가나. 그래도 시키는대로 했어. 이미 선생이 가르치려고 나섰고 우리는 되든 안 되든 배울라고 나선 사람인디. 또 좋고, 해보니까.”

완성됐을 때는 실감이 안 났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저걸 글씨라고 썼는지, 저게 맞는지 기분이 좋으면서도 말귀도 못 알아듣는 할마이들 시키느라고 선생이 얼매나 골 아팠겠나 싶었다”면서 “눈물이 나서 돌아서서 닦았다. 딸 같은 사람들한테 보이면 안 좋잖아”라고 말했다.

완성된 서체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한 '칠곡 할매'들. 칠곡군 교육문화회관 제공

할머니들의 이런 노력으로 탄생한 ‘칠곡할매 서체’는 16일 칠곡군 홈페이지에 무료 배포됐다. 각 서체에는 할머니들의 이름을 딴 별칭이 붙었다. ‘이원순체’ ‘김영분체’라고 부르는 식이다.

코로나에 멈춘 한글 공부…“더 배우고 싶어”

이 할머니의 시에는 가족에 대한 내용이 종종 등장한다. 마을 벽화로 새겨진 ‘비가 오면’이라는 시에도 ‘그때는 아들한테/전화해 본다’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어린 시절 세상을 떠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아버지는 얼굴이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릴 때 사망했다. 이 할머니는 본인 작품 중 가장 아끼는 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자꾸 생각이 나”라며 울먹였다.

칠곡군 교육문화회관 제공

가족 이야기를 제외하면 “온갖 게 다 쓰고 싶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테레비에 나오는 아가씨들한테 편지도 쓰고 싶고, 우리 글 배울 때 자주 들여다 봐 준 회관 군수 양반한테도 쓰고 싶고”라며 “자식들한테도 ‘나 이제 선생한테 글 배웠다’라고 편지를 쓰고 싶다”고 했다. “아직 줄줄 읽고 쓰는 건 안 된다. 그게 마음대로 안 돼”라고 한 그는 “앞이 안 보이다가 눈을 뜬 것 같은 기분으로 살아. 내 이름을 안 보고 쓸 수 있는 것도 좋고, 한 글자라도 더 배우고 싶고”라며 즐거워했다.

칠곡군 교육문화회관 제공

이 할머니는 한글 공부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감정이 북받친 듯 자꾸 눈물을 보이다가도, 이내 재치 있는 농담을 하고 해맑게 웃었다. 다만 코로나19를 언급하자 목소리에 한숨이 섞였다. 이 할머니는 “코로나 때문에 공부를 아예 못 가. 모이지도 않아”라며 “몇년 동안 2시간씩 해서 배운거 이제 쪼매 알라고 하는데 1년 아무것도 안 배우니까…”라고 답답해했다.

“나는 요즘 그런다. 아고 야야, 젊은 사람들 복통 터지겠다. 이 할마이도 글 배우다가 못 배운게 고마 애가 터지는데 너그는 크게 마음 먹고 공부하는데 막막하겠다. 그래도 책을 들여다보니까 좀 낫드라…저 할머니 이상하다 욕할지 몰라도 젊은 사람들 잘 살으래이. 차 타고 다니면 성내지 말고 우락우락 가지 말고 조심히 잘 댕겨라. 건강해라. 그게 부탁이고 인사지, 다른 인사는 없어.”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