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신우 박종흔(서울 영동교회 장로·사진) 대표 변호사는 군 법무관 시험과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변호사로서 20년 외길을 걸었다. 청년 시절에 그가 꿈꾼 것은 법률가가 돼 성경 말씀대로 빛과 소금의 소명을 감당하는 일이었다. 지금 그의 소망은 변호사가 믿을 수 있는 이웃이 될 수 있도록 헌신하며 봉사하는 것이다. 그런 그가 최근 제51대 대한변호사협회장에 출마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법률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부친이 목회자다. 어릴 때부터 신앙 가운데 자랐다. 아버지는 4명의 자식 가운데 한 명은 목회자가 돼 영혼을 구하고, 한 명은 법조인이 돼 약자를 돕고, 한 명은 의사가 돼 목숨을 살리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어려서부터 듣고 자랐다. 제가 법대에 가서 법조인이 되길 원하셨다. 저도 아버지의 소원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다고 생각해 법조인이 됐다. 형님이 목회자이고, 여동생 남편이 의사다. 결국 아버지의 소원이 이뤄진 셈이다.”
- 가장 보람을 느낀 소송을 소개하면,
“강의할 때 소개하는 사건이 있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삼촌이 찾아 왔다. 조카 주장에 따르면 지갑을 훔친 것이 아니고 길에 떨어져 있는 것을 주웠는데, 문을 부수고 집에 침입해 지갑을 훔친 특수절도죄로 1심 실형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접견을 가서 면담했다. 자신은 길에 떨어진 지갑을 주워서 깨끗이 닦아 집에 둔 것 밖에 없는데, 경찰관도, 검찰도 심지어 국선변호인 마저 자신의 말을 믿어 주지 않고 자백하라는 말만 하고, 판사도 자신의 말을 믿어 주지 않는다고 했다. 피고인의 말을 들으면서 피고인이 거짓말 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 억울해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 친구는 중국집 배달원이었다. 부모님도 일찍 돌아 가셨고, 힘들게 사는 청년이었다.
어떻게 무죄를 입증할 수 있을까. 어떻게 알리바이를 입증할까 고민했다. 이 친구는 신용카드도 없고, 차도 없으니 블랙박스도 없고 입증할 만한 것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핸드폰을 이용하기로 했다. 전화 주고받을 때 기지국 조회를 하여 피해자가 지갑을 잃어버린 집 근처에 이 친구가 가지 않은 사실을 입증하기로 했다. 먼저 그 친구에게 피해자 집 근처로 간 사실이 있는지 물어보니 자신은 그 근처로 간 사실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기지국이 나오도록 핸드폰 통화기록 내역을 조회했다. 법원을 통해도 1년치 밖에 나오지 않는데 다행히 구속돼 재판을 받았기에 1년이 지나지 않아 그 시점 전후 통화 기록 내역을 받아 볼 수 있었다.
나타난 기지국을 보니 피해자의 집과는 아주 떨어진 곳에서만 통화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점유이탈물횡령죄는 될 수 있으나 특수절도죄는 아니라는 주장을 해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친구의 직업이, 학력이 좋지 않다 보니 선입견을 갖고 이 친구를 경찰, 검사, 국선변호인, 판사가 대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 친구의 말을 믿고 조금만 신경을 썼다면 억울하게 옥살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닮아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눅 20:21,행 10:34)
- 법조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성경 말씀처럼 고아와 약자를 돌보는 것이 기독 변호사의 역할과 사명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결심하고 있다.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링컨 변호사는 미국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흑인을 아프리카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어쩔 수 없이 남북전쟁을 하게 됐고 흑인의 인권을 신장하는데 큰 기여를 한 점을 볼 때 기독 변호사가 할 일이 무엇인지 작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링컨처럼 거대한 일을 할 수 없을지라도 주변의 소외 이웃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데 소명을 다한다면 빛과 소금으로서의 소임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변호사 수가 3만명을 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변호사는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존재다. 개선 방안이 없나.
“과거에 비해 변호사 수가 많아져 변호사를 만나는 것이 훨씬 쉬워졌지만 여전히 변호사의 곁에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에 여러 단체에서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처한 분들을 돕고자 법률구조공단, 법률구조 사업 등을 하고 있다. 하지만 변호사의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어 변호사의 참여를 많이 이끌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변호사의 노동의 가치를 현실적 수준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획기적으로 의료보험과 같은 법률보험 제도의 도입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자동차 사고를 대비해 운전자 보험을 가입하는 것과 같이 법률 분쟁을 대비해 법률보험을 도입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해 볼 수 있다.”
- 변호사를 꿈꾸는 이들이 있을 것으로 안다. 조언 부탁하면.
“변호사 업계가 어렵다고 하지만 변호사 직역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일어나고 있다. 오히려 최근에 변호사들이 송무가 아닌 다양한 영역으로 더욱 사회 깊숙한 곳곳에 자리 잡게 되면서, 법의 지배, 인권 의식이 높아지고 공익 전담 변호사들도 많이 생겼다.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으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미국의 경우 고위직이나 임원이 되려는 자는 로스쿨에 많이 진학한다. 법적 지식이 뒷받침돼야 임원이나 고위직 업무를 잘 감당할 수 있다. 법조인은 약자, 억울한 자, 가난한 자를 도울 수 있다. 변호사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변호사라는 직업적 사명감을 갖고 세상 속으로 나아가 어두운 세상 속의 빛과 소금이 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제 자녀에게도 로스쿨 진학을 장려할 예정이다.”
- 존경하는 법조인이 있는지.
“조영래 변호사,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변호사님을 존경한다. 역대 협회장 중에는 초대 인권위원장이신 고(故) 김창국 변호사님이 걸어온 길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분은 국가 권력에 대해서도 옳지 않다고 판단되면 당당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당직 변호사제도, 외국인노동자법률상담소를 만들어 법의 보호가 필요한 자들을 위해 변호사가 활동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으며 전관 예우 방지, 변호사 공익활동 의무화, 징계 공공성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변호사법 개정을 통해 변호사 단체의 사회적 위상을 높였다. 제가 변호사로 활동하면서도 정말 보람을 느끼는 이런 제도는 김 변호사님의 변협 회원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자기 희생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앞으로 계획은.
“약한 자를 계속 찾아 나설 생각이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지금도 서울영동교회에서 진행하는 누가 선교회 활동을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교회가 한 달에 한번 무의촌 봉사를 시작하지 벌써 38년째다.(코로나 19로 올해 1월까지만 봉사)
매달 셋째 주에 무의촌에 의사 중심으로 의료봉사를 했다.(무료법률 상담, 이·미용, 사진 봉사도 추가) 개인적으로 2000년부터 누가선교회에서 무료 법률상담 봉사를 했다. 누가선교회 회장을 2년 하는 동안 의료팀 이·미용, 사진 봉사팀을 이끌고 베트남을 방문해 현지 주민과 함께 했다.
소송에서 승소해 성공보수가 많이 들어오는 삶도 의미가 있다고 할수 있겠디. 하지만 저는 누가선교회 활동을 하며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재능을 소외 이웃과 나누는 삶을 통해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곤 한다.
누가선교회 활동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제가 그 분들과 함께 나누며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제가 더 큰 은혜를 받고 있다. 앞으로도 주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저의 시선을 고정하고 약한 자를 찾아 변호하는 삶을 살고 싶다.”
- 대한변호사협회장에 출마하게 된 변을 듣고 싶다.
“변협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 인권과 정의의 수호자로서 변협이 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권력에 대한 감시자, 비판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 변협은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인권과 정의의 보루로서 변협을 바로 세워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변협을 만들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 2007년부터 회무를 꾸준히 해 왔기에 회무에 밝다. 또 13년간 다양한 변협 집행부 활동을 하며 느껴왔던 문제점, 개선점, 신설해야 할 제도를 잘 알기에 변협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출마했다.
협회장에 당선된다면 고 김창국 변호사님의 걸어온 길을 따라 진정으로 변호사들이 의지할 수 있는 변협,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것이다.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상황에서 침묵하지 않고 국민의 입이 되어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변협,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변호사들을 위한 다양한 법률문화를 선도하는 변협을 이끌어 나가고자 한다.
변호사로서 협회장이 되어 부조리한 제도를 개선하고 많은 회원들이 기댈 힘이 되는 변협, ‘변호사가 되어서 보람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변협다운 변협을 이끌고 만들고 싶다.
우리나라에는 특히 유사 법률 직군이 많아 변호사 영역이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을 온몸으로 막고, 변호사 회원이 요청하면 어느 곳이든 달려가는 회장이 될 것이다. 또 협회장 업무수행에 대해 중간평가를 실시하고자 한다. 전국회원들에게 변호사로서의 긍지와 희망을 심어주는 협회장이 돼 변호사를 위하고 종국적으로 국민을 섬기는 변호사들이 되도록 하는데 작은 보탬이 되겠다.”
◇박종흔 변호사 △1966년생 △대구 달성고 졸업 △서울대 법대 졸업 △법무법인 신우 대표 △서울대, 한국외대, 중앙대 겸임 교수△대한변호사협회 재무이사 및 교육이사 △세무변호사회 회장 △서울 영동교회 장로.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