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터로, 조수로…백남준 개인전 두 갤러리 각별한 사연

입력 2020-12-18 06:12
2006년 백남준이 74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때 세상은 애도했다. 컬렉터 안혜령(62)씨도 마찬가지였으나, 애도 방식은 좀 달랐다. 그는 1992년에 산 첫 컬렉션 ‘볼타(Volta)’를 비롯해 자신이 소장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9점을 모두 거실에 전시했다. 그러곤 거실 불을 끈 뒤, 비디오아트의 영상만을 틀어 감상하며 한 세기가 낳은 천재의 죽음을 슬퍼했다.
리안갤러리 전시에 나온 백남준 작, '볼타'(1992년 작).

대표적인 백남준 작품 컬렉터인 그가 지금은 화랑을 차려 백남준 전시를 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내년 1월 16일까지 하는 ‘백남준’에서다. 이 갤러리에서 백남준 전시는 2008년, 2010년에 이어 세 번째다. 안 대표는 “92년 미국 뉴욕에 갔다가 록펠러 광장 스케이트장에 전시된 백남준 작품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이 컬렉션 계기가 됐다”며 “100년 이내 다시 나오기 힘든 작가다. 더 알려야 한다”라며 전시의 의미를 설명했다.
리안갤러리 전시에 나온 백남준 회화 '무제'(1986년), 캔버스에 유채.

전시에는 ‘볼타’를 비롯한 비디오 설치 작품과 회화 작품 20여 점이 나왔다. 백남준은 다양한 기술을 이용한 실험적인 작업을 통해 현시대 어떤 예술가보다 미래의 흐름을 예견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볼타는 소형 모니터로 이목구비를 만들고 몸체에 해당하는 구형 TV케이스 안에 네온으로 볼트(V)의 형상을 만들어 넣은 비디오 조각이다. 전지를 최초로 개발한 이탈리아 물리학자 알레산드로 볼타의 이름을 땄다. 이 밖에 ‘정약용’ 등 사람 이름을 딴 비디오 아트 작품, 새천년을 맞아 ‘DMZ 2000’ 공연에서 선보였던 첼로와 월금 형태의 대형 비디오 조각을 변주한 ‘호랑이는 살아 있다’, 한국적 정체성의 상징인 색동과 서예를 결합한 회화와 실크스크린 등이 나왔다.

개관 27주년을 맞은 박영덕화랑이 비에이치에이케이(BHAK)갤러리로 거듭나며 갖는 재개관 전에서도 작가 백남준과 화랑 대표의 끈끈한 인연이 새삼 조명받고 있다. 박영덕화랑은 아버지 박영덕(64) 전 대표에서 아들 박종혁씨의 2세 중심 체제로 전환했다. 이에 맞춰 갤러리도 강남구 청담동에서 용산구 한남동으로 이전했다. 신임 박종혁(27) 대표는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졸업 후 세계 최대 경매회사 크리스티 산하 크리스티 에듀케이션 뉴욕에서 아트 비즈니스 석사를 취득했다.
BHAK갤러리 전시에 나온 백남준 작 '테크노 보이 2'(2000년 작).

이전 기념전 ‘더 히스토리(역사)’는 갤러리와 함께했던 국내외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줌으로써 BHAK가 걸어온 길을 압축한다. 백남준을 비롯한 대표적인 단색화 계열의 이우환, 김창열, 윤명로, 콜롬비아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 등이 그들이다. 총 13명의 작가 중에서 백남준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박 전 대표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으나 집안 사정으로 갤러리스트로 변신했다. 5녀 2남의 맏이인 박명자 현대화랑 대표가 사업 확장을 하며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BHAK갤러리 전시에 나온 백남준 드로잉 '무제'(2001).

현대화랑은 백남준의 전속 화랑이었다. 84년 1월 1일 전 세계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위성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선보이며 국내에 존재감을 드러낸 백남준이 88년 한국 첫 개인전을 선보인 곳이 현대화랑과 원화랑이었다. 85년부터 현대화랑에서 몸담았던 갤러리스트 박영덕은 이때부터 백남준 전담자가 됐다. 백남준이 국내 전시를 할 때마다 그림자 역할을 했다.

93년부터는 독립해 박영덕화랑을 운영하면서는 해외 아트페어에 참가할 때마다 백남준 작품을 들고 나갔다.. 이것이 백남준 작품의 컬렉션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백남준 편지만 모아도 전시가 될 정도로 백남준과 관련된 모든 걸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에는 비디오 아트 작품과 함께 회화 설치 드로잉 등 다양한 장르가 나왔다. 그는 “백남준은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 입체 작품은 미술사적 가치를 생각하면 100억 원이 넘어야 하는데 아직도 7억, 8억 수준”이라며 안타까워했다. 12월 31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