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천식사망 원인은 대기오염” 세계 첫 사례 나왔다

입력 2020-12-17 16:11
엘라 키시 데브라, 더 가디언 홈페이지 캡처

영국 법원에서 이산화질소와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이 9세 여아의 사망 원인으로 인정됐다. 대기오염이 사망 원인으로 인정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16일(현지시간) 가디언과 BBC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영국에서 천식을 앓던 9세 아동 엘라 키시-데브라의 사망 원인에 자동차 매연으로 인한 대기오염이 포함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법의학 전문가인 필립 발로우 런던 남부 검시관은 2주간에 걸친 공판 끝에 엘라가 “과도한 대기오염의 영향을 받아 천식으로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알렸다. 그는 엘라의 사망 진단서에 급성 호흡부전, 중증 천식, 대기오염 노출을 사망 원인으로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발로우 검시관은 엘라가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을 넘는 수준의 이산화질소와 미세먼지에 노출됐으며, 이는 주로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오염이 엘라의 중증 천식을 유발하고 악화시켰다면서 대기오염은 특히 어린이와 천식 환자에게 위협적이라고 설명했다.

스티븐 홀게이트 사우스햄튼대 면역약리학 교수도 엘라의 의료기록을 분석해 “엘라는 다른 천식 환자와 달리 겨울철 대기오염이 심해질 때 발작이 나타났다”면서 “엘라의 사망이 대기오염과 관련됐으며, 주거 환경을 바꿨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실제로 엘라는 2013년 2월 사망하기까지 런던 남동부의 교통량이 많은 한 도로에서 30m 이내에 위치한 집에서 살았다. 이 때문에 체조 대회에서 메달을 받아 올 정도로 건강했던 엘라는 2010년 천식 발작을 시작한 뒤 병원에 30차례 넘게 실려 가는 등 고통을 겪다가 2013년 세상을 떠났다.

로사문트 키시 데브라, 더 가디언 홈페이지 캡처

지난 2014년 처음으로 엘라의 사망 원인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을 당시 환경과 관련된 언급은 없었지만, 교사 출신인 엄마 로사문트 키시 데브라가 딸의 이름으로 천식 아동을 위한 모금을 시작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로사문트는 “엘라가 사망할 무렵, 이 지역 대기오염 수치가 크게 치솟았다고 알려주는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엘라네 집 주변 도로 공기 중 이산화질소 수준은 2006년~2010년 법적 최대치인 연 40㎍/㎥를 계속 초과했지만, 엘라가 도로를 따라 학교를 등·하교할 동안 가족들은 대기오염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고 아무도 경고해주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엘라는 런던에서 가장 번화 한 도로 중 하나인 South Circular Road에서 25m 떨어진 곳에 살았다. BBC 홈페이지 캡처

대기오염이 사망 원인으로 인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영국 언론들은 딸의 사망 후 7년간 끈질기게 원인 규명에 매달려온 엄마의 노력이 결실을 봤다면서 앞으로 대기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특히 로저 하라빈 BBC 환경 분석가는 “가난한 사람들은 최악의 공기를 마시고 부유한 사람들은 (대기오염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면서 “이번 판결이 영국의 사회적 형평성에 대한 논쟁을 고조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도 이번 결론을 두고 “다른 가족들이 엘라의 가족이 겪은 비극을 겪지 않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대기 오염은 특히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공중 보건 위기”라고 전하면서 런던 시내 배출가스 규제 강화 등과 같은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영국에서는 매년 2만8000명에서 3만6000명이 대기오염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남명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