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 누명을 쓰고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성여(53)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박정제)는 17일 오후 수원법원종합청사 501호 법정에서 열린 이 사건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경찰에서 작성한 각 진술서와 피고인에 대한 각 경찰 진술조서 및 피의자 신문조서에 기재된 피고인 자백 진술은 피고인을 불법 체포·감금한 상태에서 잠을 재우지 않고 쪼그려 뛰기를 시키는 등 가혹행위로 얻어진 것”이라며 “이에 임의성이 없거나 적법절차에 따라 작성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또한 “경찰 및 검찰, 재심 전 1심 법정에서의 피고인 자백은 그 진술 내용이 피고인 신체상태, 범행현장의 객관적 상황 및 피해자에 대한 부검감정서 등 다른 증거들과 모순·저촉되고 객관적 합리성이 없어 신빙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특히 “자신이 이 사건 범행의 진범이라는 이춘재의 수사기관 및 이 법정에서의 진술은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합리성을 띠고 있다”며 “당시 범행현장이나 피해자 사체 상태 등 객관적인 증거들과도 부합해 그 신빙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이어 “범행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와 피고인의 음모가 동일인의 것이라는 취지의 국과수 감정인이 작성한 방사성 동위원소 감정서는 판단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내용에 오류와 모순점이 있어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국과수 감정인이 작성한 범행현장음모에 대한 혈액형 감정 결과 또한 당시 발견된 음모 전부에 대한 감정 결과라고 볼 수 없어 그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찰 검증조서, 검찰 검증조서, 경찰 진술조서도 다른 증거들과 모순·저촉돼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고 그 밖에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공소사실 기재 일시에 피해자를 강간하고 목을 졸라 살해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윤씨는 1988년 9월 16일 당시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자택에서 박모(당시 13세)양이 잠을 자다가 성폭행당한 뒤 숨진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됐다.
사건 발생 이듬해 범인으로 검거된 윤씨는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윤씨는 사건 당시 1심까지 범행을 인정했다. 이후 2·3심에서 고문을 당해 허위자백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날 경찰청은 법원이 윤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직후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입장문을 냈다.
경찰청은 “뒤늦게나마 재수사로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을 검거하고 청구인의 결백을 입증했지만, 무고한 청년에게 살인범이라는 낙인을 찍어 20년간의 옥살이를 겪게 해 큰 상처를 드린 점을 깊이 반성한다”고 했다.
이어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 보호’는 준엄한 헌법적 명령으로, 경찰관의 당연한 책무”라며 “경찰은 이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억울한 피해자가 다시는 없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