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운동의 성지’(聖地) 안동 임청각(臨淸閣)이 옛 모습 되찾는다.
일제가 우리의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임청각 마당을 가로지르며 건설했던 철로가 80여년 만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철로가 사라지게 된 것은 정부의 중앙선 복선 전철화 사업이 완료됨에 따른 것이다.
이 사업으로 인해 안동시 운흥동에 자리 잡은 안동역사(安東驛舍)가 송하동으로 이전하고 운행선 변경으로 기존 철로는 철거되면서 임청각 바로 앞으로 80년 동안 지나던 기차 운행도 함께 중단됐다.
이를 계기로 국무령 이상룡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는 16~17일 연이어 기념 행사를 마련하고 임청각의 옛 모습 복원을 자축했다.
16일 오후 7시 36분에는 마지막 기차가 임청각 앞을 지나갔다.
이 기차는 30년 운전 경력의 영주기관차승무사업소 소속 석주원 기관사가 운전하는 ‘동해발 부전행 제1681 무궁화호’였다.
이를 기념해 석주 선생 종손 이창수·이항증 씨, 기념사업회 김호태 사무국장 등이 무궁화호에 탑승한 뒤 마지막 기차의 운행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17일 정오에는 임청각의 독립운동 역사를 되새기는 ‘임청각 앞 기차 운행 종단 행사’를 열고 방음벽 철거와 축포 발사 등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또 임청각 사당에서 고유문 낭독과 시민들의 소감문 낭독 등이 이어졌고 부대행사로 농악 길놀이와 살풀이 공연도 함께 열렸다. 참석자들은 만세 삼창과 독립군가 노래 제창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행사에는 석주 선생의 종손과 기념사업회 이종주 이사장, 정재숙 문화재청장, 이철우 경북지사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임청각은 보물 제182호로 임시정부 초대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生家)로 잘 알려져 있다. 석주선생은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전 재산을 처분한 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해 만주로 망명했다.
임청각은 500년의 민족 정기를 이어오며 석주 선생을 비롯해 독립유공자 11명을 배출했다. 민간 가옥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종묘, 영주 부석사와 함께 ‘평생에 꼭 가봐야 할 1001개의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항일 투쟁의 밑거름이 된 임청각은 본래 99칸의 모습이었으나 민족 정기를 끊으려는 일제 만행으로 철로가 가로 놓이며 본 모습을 잃었다.
임청각 앞 중앙선 철로는 1942년 2월 일제강점기 때 설치됐다.
일제는 항일독립운동 의지를 꺾고 민족정기 말살을 위해 노선을 우회시켜 임청각을 가로지르는 철로를 부설했다. 이 과정에서 임청각 내 50여 칸의 행랑채와 부속 건물이 파괴됐다고 알려진다.
한국철도는 그동안 진동과 소음으로부터 임청각을 보존하기 위해 방음벽 및 장대레일을 부설하는 등 세심하게 관리했다.
기념사업회는 80여년 만에 철길 철거로 옛 모습 복원에 시동을 건 임청각이 나라 사랑의 교육 장소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계획이다.
경북도와 안동시는 2025년까지 예산 280억원을 들여 일제강점기(1941년) 중앙선 철로가 놓이기 이전의 옛 모습으로 복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독립 운동의 성지였던 임청각이 철도 이설과 복원 사업을 계기로 애국 애족의 상징적 공간으로 거듭나게 되고 국난 극복의 국민적 의지를 모으는 공간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임청각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안동=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