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밖에 되지 않은 동거남의 아들을 여행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40대 의붓어머니에 대한 항소심이 열렸다. 검찰은 이날 항소심에서 원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의붓어머니 측 변호인은 “죽일 의도는 없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재판부가 숨을 쉬지 않는데도 119에 신고가 늦어진 이유를 묻자 “장난치는 줄 알았다” “기절한 줄 알았다”고 답했다.
대전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이준명)는 16일 오후 2시 316호 법정에서 살인·아동복지법상 상습 아동학대·특수상해죄 피고인 성모(41·여)씨에 대한 항소심 결심 공판을 진행했다. 검찰은 이날 피고인을 사회와 영원히 격리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대전지검 천안지청 장진영 검사는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며 “1심에서 신고한 22년형은 가볍기 때문에 중한 형을 선고해 달라”고 주장했다.
장 검사는 이어 “피고인이 협소한 여행용 가방에 7시간 넘은 긴 시간 동안 피해자를 가둔 것도 모자라 가방 위에서 압박한 점으로 미뤄 살인 의도가 있었다”고 했다. 가방을 테이프로 감아 밀봉하거나 위급한 상황의 피해자를 보고도 곧바로 119에 신고하지 않은 것도 범행 의도를 뒷받침하는 주요 정황으로 제시했다.
“특히 피고인이 가방 위에서 밟고 뛰는 과정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며 “피해 아동은 피고인의 말 한마디에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작디작은 가방에 들어간 채 살려 달라는 얘기조차 못 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장 검사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피해 아동에게 헤어드라이어를 이용해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는 등 정상적으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고문을 했다”고 한 장 검사는 “가방 안에서 피해자는 ‘엄마 숨이 안 쉬어져요. 숨 숨 숨’이라는 말뿐이었다”며 울먹였다.
“피해자를 무인격체로 생각하며 무자비한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감형을 위해 친자녀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후안무치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한 장 검사는 “1심에서도 잔혹한 범행수법이 인정됐듯이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예견 가능했다. 1심에서 선고한 22년형은 너무나 가볍기 때문에 원심보다 더 중한 형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공판엔 검찰 측 증인으로 피해자의 조부가 채택됐지만 건강상 등의 이유로 거부하면서 증인신문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피고인은 황당한 답변을 내놔 방청객이 술렁이기도 했다.
당시 친자녀들이 피해자가 숨을 쉬지 않아 이상하다고 말했다는데 맞느냐는 질문에 피고인은 “장난치는 줄 알았다. 눈으로는 확인이 안 됐고 안아 보니 팔이 축 처져 있었다”고 답했다. 119에 신고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피해자를 가방에서 꺼내 안고 흔들었는데 손이 축 처져 기절한 줄 알았다”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해 방청객들을 술렁이게 했다.
성씨의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피고인의 왜곡된 훈육 개념으로 인해 피해자가 숨진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했다”며 “피고인의 죄가 크고 무거운 것을 알고 있지만 죽일 의도는 없었다. 염치불구하고 선처해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성씨는 “주시는 벌 달게 받겠다. 평생 속죄하며 고통받으며 살겠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성씨는 지난 6월 1일 정오쯤 천안 자택에서 동거남의 아들 B군을 가로 50㎝·세로 71.5㎝·폭 29㎝ 크기 여행용 가방에 3시간가량 감금했다가, 다시 4시간 가까이 가로 44㎝·세로 60㎝·폭 24㎝의 더 작은 가방에 가둬 결국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현장 검증 결과 피해 아동을 가둔 두 번째 가방은 몸보다 더 작아 가방 속에서 가슴과 배, 허벅지가 밀착돼 목이 90도로 꺾였을 것으로 추정됐다. 성씨는 이 가방에 피해 아동을 가둔 뒤 “숨이 안 쉬어진다”는 호소에도 가방 위에 올라가 수차례 뛰는 등 계속 학대했다.
안으로 뜨거운 헤어드라이어 바람을 불어 넣기도 하고 숨을 쉬기 위해 지퍼 부분을 떼어내고 손가락을 내밀자 테이프를 붙이기도 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성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은 1월 29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